이야기보따리/기억

[기억-정진원]의식과 지평의 끝선이었던 의왕 하우고개

안양똑딱이 2017. 3. 18. 18:52

하우고개 
 
 ‘하우고개’ 란 고개 이름이 우리나라 여러 곳에 있다고 한다. 경기도 부천시에도 있다. 왜 하우고개라 하였을까? 넘기 어려운 고개를 힘겹게 오를 때 ‘하우 하우’ 가쁜 숨소리에서, 아니면 고개 마루에 올라앉아서 내쉬는 ‘하아― 하아―’ 소리에서, 또는 산적이나 귀신을 만난 두려움에서 자기도 모르게 나온 외마디 소리에 따른 의성어일 듯싶다.

학고개(鶴峴)가 음운 변화를 거쳐서 하우고개가 되었다고도 한다. 여우가 출몰하는 여우고개(狐峴)를 좋게 말해서 소가 드러누운 모양(蝸牛)의 고개, ‘여우(如牛)’로 하고, 그 ‘여우’를 훈차해서 다시 ‘여우고개(狐峴)→하우고개’로 되었는지? 어색한 억지 해석은 고개에서 일어난 돌발 사건에서 숨을 구석이 어디인가? ‘하우(何隅)’인데 현학적이기만 하지, 가당치 않은 것이다. 

인덕원에서 하우고개를 넘어 너더리까지 걸었던 옛날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다. 아니면 반대 방향 말죽거리에서 말을 쉬게 한 다음 너더리를 지나서 인덕원 쪽으로 넘어오는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인덕원은 조선시대 원(院)이 있었던 주막거리였다. 인덕원에서 약간 언덕길로 오르면서 왼쪽 야산(나중에 포도밭)에 세거리 가는 오솔길이 있었으며, 오른쪽은 참나무 숲(나중에 신성중ㆍ고등학교)이 있었다.

언덕을 넘어서 한참 내려가면 성고개 앞길, 모퉁이 돌아서 벌모루(서울구치소 입구), 더 나가면 양지편, 개울 건너 한직골, 산모퉁이 돌아서 독쟁이, 조금 올라가면 원터이다. 원터가 하우고개 밑 동네였다. 서울의 ‘현저동(峴底洞)’처럼 고개 아래 마을이었다. 거기서부터 하우고개가 시작된다.

하우고개를 넘어가면 윗메루니(현 정신문화연구원), 내려가면서 아랫메루니와 크고 작은 동네들이 있었고, 더 내려가 벌 가운데 너더리가 있었다. ‘너더리’는 ‘널(板)다리(橋)’이며, 한자로 고쳐서 지금의 판교(板橋)이다. 너더리를 건너 한참 거리에 말죽거리(지금 양재동)가 있었다.

어릴 적엔 원터까지가 우리의 세계였다. 따라서 하우고개는 의식과 지평의 끝선이었다. 하우고개 이쪽까지가 이승이고, 저쪽은 저승이었다. 그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어떤 사람들이 사는지, 그곳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너더리’라는 말이 어슴푸레한 가운데 외계인들이나 사는 곳으로 들렸었다. 사람들이 사는 곳이 아니라 별유천지로 생각했었다. 하우고개에 나무하러 갔던 사람이 여우 울음소리를 들었다든지, 산나물 캐러 갔던 여자가 뱀에 물려 죽었다든지 하는 이야기가 있었다. 허구로 수다 떠는 이야기에는 호랑이가 바위 뒤에서 졸고 있을 때 얼른 도망쳐 왔다는 등의 말들이 있었다. 

여름철이면 나무꾼들이 나무하러 그 산 고개까지 들어갔다. 그 나무를 칠월비라 하였던 것 같았다. 음력 칠월에 자른 풀이라는 뜻일 것이다. 여름에 잘라 그곳에서 마르게 두었던 나무를 겨울철에 동이 쳐 내려왔다. 마차로 실어내기도 했으며, 서울에 가져다가 팔기도 하였단다.

초여름에는 아낙네들이 산나물을 캐러 그곳에 갔었다. 각종 취나물, 참나물, 씀바귀, 원추리, 도라지, 고사리, 고비, 더덕, 두릅 등이 산에 지천이었던 모양이었다. 저녁때이면 나물꾼들이 머리와 등에 나물 한 자루씩을 이고, 지고 마을 앞을 지나가곤 했었다. 

하우고개 바로 아래 원터 마을이 있었다. 지금 원터에는 하우현성당이 있다. 우리나라 대개의 성당들이 그렇듯이 천주교 박해의 피해를 면하기 위해서 궁벽한 산동네인 이곳에 성당이 세워지게  되었을 것이다. 6ㆍ25 전쟁 후에 명륜보육원이 생겼다. 언덕 쪽으로는 천주교 공동묘지가 만들어졌다.

지금은 고개라고 할 것도 없다. 안양-인덕원-판교 간 도로가 개통된 지 오래여서 수없이 많은 차들이 왕래하고 있다. 하우고개에는 꼬불꼬불 길이긴 하지만 포장도로가 잘 되어 있어서 쉽게 판교 쪽으로 넘어갈 수 있게 되었다. 서울외곽순환도로 청계요금소에서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마을이 원터이다.

 

 수필가이자 문학박사인 정진원 선생은 의왕시 포일리 출신(1945년생)으로 덕장초등학교(10회), 서울대문리대 지리학과를 졸업했으며 서울대 대학원에서 지리학, 석·박사과정을 마쳤다. 박사학위논문으로 ‘한국의 자연촌락에 관한 연구’가 있다. 성남고등학교 교사, 서울특별시교육청 장학사, 오류중학교 교장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