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머신/옛사진읽기

1970년대 안양동고(현 신성고) 통학버스

안양똑딱이 2016. 6. 1. 16:11

 

안양동중학교의 1970년대 통학버스로 안양시 자료집에서 발견한 사진입니다. 안양동중은 현 신성중학교의 초창기 교명으로 1969년 12월 27일 설립인가를 받아 1970년 3월 2일 인덕원사거리에서 청계방면인 안양시 관양동 현 인덕원 삼성아파트 자리에 개교했는데 거리가 멀어 안양시내에서 통학버스가 운행되었지요.
안양동중과 1974년 개교한 안양동고는 우여곡절이 참 많습니다 1980년 3월에는 교명이 신성중학교와 신성고등학교로 바뀝니다. 이어 1996년에는 관양동 부지를 매각하고 지금의 안양시 만안구 소곡안 안쪽에 신축교사를 짓고 이전합니다.
2004년에는 학교법인 운영자가 바뀌지요. 실절적으로 법인이 매각된 것이라 할 수 있는데 2004년 8월 10일 원천의료재단 안대종 중화한방병원장이 학교법인 신성중.고교 9대 재단이사장으로 정식 취임하면서 공식 인수를 완료하지요. 
학교법인의 경우 양수·양도의 대상이 되지 않는데 당시 감정가 700억 재단 80억에 넘겼다고 의혹이 제기되는 등 신성학원 경영권을 둘러싼 논쟁이 법정 비화로 이어지는 등 진통을 겪다가 안대종 이사장의 경영권이 인정되고 2008년에는 학교법인 원천학원으로 법인명이 변경되면서 일단락되지요,
신성중고교 설립 과정에 있어서도 숨은 얘기도 있습니다. 일각에서는 신성중고가 북한에 있던 신성학교의 후신이라고 하는데 다르다는 것이지요.

반면 이 사진과 내용을 보고 글을 올린 한 신성고 졸업생은 "1990년부터 1996년까지 신성중학교 신성고등학교를 나온사람입니다. 안양동에서 신성으로 교명을 바꾼 것은 일제치하 북한 평안도 선천에서 민족교육을 위해 설립했던 신성을 잇기 위해 세운학교가 맞습니다. 소문이 아닙니다. 1990년대 역사교과서에도 대성학교, 배재학교와 나란히 독립운동했던 학교로 나와 있었고요 당시 만주지역까지 이름을 떨친 유명한 자랑스런 학교였다고 학창 시절 많은 선생님들께서 가르쳐주셨다"고 댓글을 다는 등 설립과정에 대한 논란이 많습니다.
어쨋든 안양광역신문에서 신성중 설립과정에 직접 관여했던 인물을  인터뷰한 기사에 의하면 신성중은 1956년 5월 7일 관양동 부림교회(지금의 동은교회 전신)앞에서 성격구락부 교명과 천막교실 1개로 시작하여 성림중학원, 성림고등공민학교, 안양동중, 지금의 신성중고로 이어졌다고 합니다. 또 1957년 교회에 나오던 대학생들의 제안으로 교사와 학생들이 흙벽돌을 찍으며 만든 학교는 3년 후 인덕원(전 학교위치)에 1.000평정도의 땅을 구입해 교실 4개 교무실1 숙직실 1 건축하였으며 학생들과 교사들이 지었다고 관계자의 증언이 있고요. 또한 나머지 땅은 그 후 전 국회부의장을 지낸 지역 정치 원로인 이재형씨가 약 4.000평을 사서 학교부지로 기증했다고 합니다.

 

[자료]신성학원 역사 이렇습니다

[2004/08/31 안양광역신문]


신성학원 역사 이렇습니다
信聖의 뿌리는 聖林이 眞實이다.

한간에 안양 교육계를 뒤흔들고 있는 신성 문제를 놓고 교육계의 원로이시고 信聖(구 東中)설립의 신파 역할을 하신 분 중 한 분을 만나 말 많은 信聖의 뿌리를 알아 볼 수 있었다.

☆.선생님은 신성과 언제부터 인연이 맺어지게 되었습니까?
나는 1967년 신성의 전 신인 聖林高等公民學校부터 시작해서 1970년 안양동중으로 승격시켜놓고 1974년에 그 학교를 그만 두었습니다.

☆.그럼 지금 하시는 일은?
1999년 교원 정년단축 바람에 명퇴를 당하고 지금은 교육계에서 물러 나와 있습니다.

☆.안양문화원에 관계하고 계시다는데?
예 지금 이곳 저곳 사회에 봉사 좀 하고 있습니다.

☆.지금 안양교육계에 가장 화제 거리 가 되어있는 신성의 근원에 대해 좀 말씀 해 주시겠습니까?
예 신성의 시작은 한국 기독교(장로교)의 성경구락부라는 것을 통해 시작되었습니다
청소년들이 중학교로 진학하지 못하는 농촌청소년에게 성경과 일반 중등교과 과목을 지도한데서 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 시작이 1956. 5. 7. 관양동 부림교회(지금의 동은교회 전신)앞에 천막교실 1개로 시작하여 학교명은 성경구락부로 라고 하였습니다, 그 다음은 성림중학원, 그 다음은 성림고등공민학교 그 다음이 안양동중 입니다. 그 다음이 지금의 신성이지요 처음 시작 할 때 학생 수는 약30명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시작 당시 교사는 당시 부림교회 청년들 (작고한 전 정창선 이사장은 당시 전도사 였고 라달윤(작고), 정진완(전 안양예고교장), 문동호, 문성용, 강덕환(전 신성서무과장), 안동철(재미) 등이 처음 시작 한 분들이었고 2 진으로 정어진 정은구 음정배등 이었다 나는 1967년부터 관계하였다.
1957년 가을에 학생들의 제안으로 교사와 학생들이 흙벽돌을 찍어서 인덕원 송재수씨 땅에 교실 2칸과 사무실 겸 숙소를 건축하였습니다.
당시에는 전기가 없어 매일 저녁 교사들과 뜻 있는 학생들이 먼저 와서 호야(조명기구)를 닦아서 불을 켜고 12시까지 수업한 후 4Km 정도 거리가 되는 학생들을 일일이 데려다 주고 숙소에 돌아오면 보통 새벽 한시 두시 였습니다.
3년 후 인덕원 (전 학교위치) 1.000평정도 땅을 구입 (평당 90원으로 기억 )하고 교실 4개 교무실1 숙직실 1 건축하였습니다. 건축비는 한푼도 들지 않고 학생들과 교사들이 직접 지었습니다. 나머지 땅은 그 후 전 국회부의장을 지낸 이 지역 정치 원로이신 이재형씨 가 약4.000평(확실한 것은 전 학교번지의 제적등본을 보면 된다) 을사서 학교부지로 기증하였습니다 (당시 평당 300원정도),
당시 학생들과 교사들의 피땀의 결정체가 오늘의 신성입니다.
정식인가가 나기 전 까지는 모두가 무보수로 오르지 불우한 청소년들을 지도한다는 일념과 학생들과 주위의 학부모들은 그러한 열정의 젊은 선생님들의 보답을 위해 형편 대는 데로 수업료라고 이름하여 얼마식 내면 그것으로 경상비에 보태어 사용하였습니다.
정식 중학교로 승격준비를 할 때도 학교부지가 규정에 미달하여 우리 처가집 땅을 차입 확보하여 인가를 받았다.
동중으로 승격하고 난 후 동쪽 신축건물을 지은 땅 구입에 대한 비화도 있지만 차마 밝히기 어려운 말이라 접어두겠다.
한 가지 더 일화를 소개한다면 당시 학교에 우물이 없어 늘 학생들이 주위 개인 집 우물을 사용하는 불편이 있었다.
어느 한해 당시 읍사무소에서 송충이 구제를 위해 학생들에게 송충이를 잡게 하고 대가를 주었다. 그 돈으로 당시 정문 앞에 있든 우물을 판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학교가 어떻게 북한에 있는 신성과 뿌리가 같다고 말 할 수 있어요 옛 어른들의 말에 “소살 떼어서 말살에 붙이지 못 한다”고 했어요
이렇게 천신만고 끝에 이루어진 학교를 지금에 와서 얼마에 팔아먹어?

☆.이러한 기회에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하시지요
예, 먼저 전 이사장님께 드리지요
혹시 당신이 성경에 나오는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을 아십니까? 그 기를 한번 읽어 보시지요 (열왕기 상 12장)입니다.
두 번째로 신성교회와 학교 교목님들 하나님 앞과 돌아가신 정창선 이사장님께 뭐라 말할 실 꺼요 할 말 있어요?
세 번째로 이사장 주변을 맴돌든 분들, 이사님들, 두 분의 교장님, 정말 너무 하셨네요
귀하께서는 돌아가신 정창선 이사장님께 특별한 사랑을 받고 그 학교 지켜달라는 명을 받지 않았나요? 어떻게 학교가 이 지경에까지 가도록 묵과하였나요 교육자로서 양심 보다 자리가 그렇게 탐났나요?

☆.감사합니다.
장시간 좋은 말씀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2004-08-31 12:36:11
진재환 관양동의 신성중을 1년반, 소곡안의 신성중을 1년반 다녔습니다ㅎㅎ 3학년들은 입시생이랍시고 이사 과정에서 우리 2학년들만 엄청 고생했던 기억이 나네요. 정작 2학년들은 새로 이사간 학교에선 수영장, 체육관 등등은 제대로 이용도 못했었는데 말이죠ㅎㅎ
임희택 저 차 타고 비산동 아찔다리 건너가던 기억이 납니다. 회수권만 달랑 갖고 다녔는데 청소하는 동안에 가버려서 안양까지 걸어왔던 기억도... 
정창선이사장님께서도 간혹 그런 말씀하셨어요. 북쪽에 있던 신성학원의 맥을 잇는 학교라고.
화진 저의 모교이야기네요..신성중,고 모두 졸업했구요.. 근데 이런 역사는 정말 몰랐네요.. 오로지 공부.. 자율학습에 학창시절을 보낸터라요..고등학교시절에는 3년내내 저녘10시가지 야간자율학습했던 기억.. 그당시 1986년~1988년에는 과외가 불법이었던 시절이라서요.. 참재미있는것이 졸업한지 25년정도 지난 지금 기억에 남는 유일한 선생님은 무시무시했던 해병대출신의 수학선생님이시네요.. 이선생님 밑에서 6년동안 수학수업및 담임하에 있다가 졸업한 친구놈은 졸업식날 울었어요.. 자기가 어덯게 6년을 그선생님 밑에서 버텼는지 ..라고 하면서요.. 근데 그분 밑에서 수학배운학생들 일류대 간 친구들 엄청많네요..추억이 새록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