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지역얘기 720

[박철하]일제강점기 모락산에 결핵요양원 있었다(2022.01)

일제강점기 모락산 결핵요양원 박철하 | 의왕향토문화연구소장 의왕문화원 발행 의왕문화 제20호에서 의왕시 오전동 모락산 서남쪽 기슭 골짜기에 '성라자로마을'이 있다. 우리 가족이 봉사단의 일원이 되어 매달 한 번씩 '치유의 집'에서 봉사를 해왔기에 내겐 아주 친숙한 곳이기도 하다. 성라자로마을은 70년 전 나환자들, 즉 한센병 환우들의 치료와 치유된 환자들의 사회 복귀 및 자활을 마련해 주고자 설립된 한국 천주교 최초의 구라사업(事業)기관이다. 6.25전쟁이 일어나기 직전인 1950년 6월 2일 미국메리놀회 소속 죠지캐롤 안 주교가 광명시 신기촌에서 한센병 환우들을 위한 구호와 의료사업으로 시작한 '성라자로 요양원'이 그 모태이다. 그런데 설립 23일 만에 6·25전쟁이 일어났다. 1951년 7월 5일 전..

[20240110]안양 기부문화의 선구자 안정호 선생

안정호 선생은 안양에 국민학교 증설 자금 5만원(현재 가치 50억)과 안양중학교 신설을 위한 땅 10만4천평(당시 700만원현재 가치 7000억원), 평화보육원에 토지 1만6천평을 희사한 인물이다. 언론에 보도된 기사를 보면 다음과 같다. 안양에 초등학교 만들라고 5만원 기부(자유신문 1946.03.13.) 군포국교에 굦구입비 1만5천원 기부(자유신문1946.0414) 평화보육원에 사유지1만6천평과 현금1만원 기부(자유신문 1947.02.24) 安養中學 신설 토지 10만4천평/당시 시가 700여만원) 희사(자유신문 1947.03.05.) 기사 초등학교 만들라고 안씨 오만원 기부(자유신문 1946.03.13) “새 조선의 공업도시;로 도시로 그 그 장략 ㅏ역속되고있는 안양지방에는 아직까지도 1개소의 초등학..

[문동원]안양 부림말의 참새와 방앗간(2008.12.12)

우리동네 '부림말' 그 곳의 방앗간((?) 이름은 버드나무 집이다. 동네 초입에 버드나무 아래에 위치해서 붙여진 이름인것 같다.조롱내 개울을 건너면 조그마한 집이 나무 아래서 목을 축이고 가라고 사람들을 부른다. 정확히 몇 살인지는 기억이 안나지만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인것 같다. 아버지와 둘이서 어디를 다녀오다 그 앞을 지나는데,내가 아버지의 소맷자락을 잡으며,하는말.... "아빠! 참새가 방앗간 그냥 지나가면 돼?" 아버지는 웃으시며 나를 데리고 버드나무 집으로 들어가셨다.-미성년자 출입금지 구역이지만 그당시에는 그런 법이 없었다. 내 머리만한 왕대포에 김치 한조각,그리고 걸직한 주인 할머니의 웃음 소리가 귀머리를 돌아 다닌다. 술 한잔에 어린 놈이 맛이 갔다. 아버지는 그 모습이 웃겼던지 계속 '허허..

[20240106]안양지역 여성운동의 선구자 故 정어진원장

1939년 시흥군 의왕 청계에서 태어나 2021년 11월 26일 향년 82세로 타계한 정어진 원장은 시흥군 시절부터 공무원 생활을 시작해 경기도 여성정책국장까지 시흥군, 안양시, 경기도 공무원으로서의 공직 생활과 아동복지시설 해관보육원(좋은집) 원장, 홀트아동복지회 소장 등을 역임하는 동안 안양시여성단체협의회를 설립하고 안양시에서 여성 권익향상을 위해 수많은 여성 지도자들을 육성하고 안양시가 현재의 여성친화도시로 선정되는 데 그 초석을 다진 안양시 여성발전을 위해 헌신해 안양 여성운동의 선구자이자 여성계의 대모로 칭송받고 있는 인물이다. 정어진 원장은 1939년 의왕 청계에서 태어나 안양여중고를 졸업했으며 사우스캐롤라이나주립대학에서 공부했다. 유년시절 덕장교회를 다녔던 그는 관양동 부림말381번지 문씨 ..

[20240106]안양제일교회 설립자 故 이형래장로

지난 2000년 9월28일 외할아버님의 유고소식을 접하고 나는 어머니와 함께 몇 시간 후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편에 몸을 담았다. 그는 애국지사도 아니었고 고위공무원직을 지내신 분도 아니었으나, 경기도 안양시 근대사에서 기독신앙인과 의료인으로 남긴 자취는 자못 큰 것이었다. 만 94세로 결혼 81주년을 목전에 두고 만96세이신 외할머님을 홀로 남기시고 돌아가신 외할아버님에 대해 우리 믿는 사람들에게 교훈 되는 점이 있어 그의 일생을 재조명하여 보려한다. 나는 학교 갈 나이인 일곱 살 때까지 외갓집에서 자라났다. 어머니의 손을 덜어주고, 손주를 키워보고 싶으셔서 자원하신 것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방학 때면 늘 외갓집에서 지냈었다. 그 곳에서 보고자란 일들은 후의 내 인생에 큰 도움이 되었다. 외할아버지의 ..

[이용구]안양 제일교회 창립 82주년 경축합니다(2012.05.17)

안양 제일교회는 2012년 5월17일이 창립 82주년이 되는날로 내가 다섯살 때 내고향 당시 경기도 시흥군 서이면 안양리에 세워진 교회로 나하고 같이 살아온 동반자와 다름없는 교회로써 언제나 친근감이 있는 교회이다 또한 나는 안양의 토박이로 중년이 훨신 넘은 1984.4.22 늦게서야 세례를 받아 오랜동안 제일교회에 다니다가 그후 같은 안양인 호계동으로 부득이 이사를 하게되어 이사간 집에서 가까운 같은 장로교회에 나가고 있다 교회는 옮겼으나 이렇게 나와 같이 성장한 교회이고 또한 내 나이와 비등한 옛 친구들이 제일교회에 남아있고 하여 가끔씩 또는 교회 야외예배나 친목단체 모임등 행사가 있으면 꼭 참석하고 있는 관계로 매월 발행되는 교회신문 월간 "열한시"를 꼭 보내 주어 그나마 교회 소식을 듣고 있으니 ..

[문원식]안양지역 최초의 교회, 덕고개교회(2000.10.20)

전 안양학연구소장 문원식 오마이뉴스 2000.10.05 16:58수정 2000.10.20 20:50 인덕원에서 경수국도를 따라 내려가다 보면 수도권 순환도로에서 호계동 신 군포사거리 사이에서 구릉지 같이 약간 솟은 지점을 지나게 되는데, 이 곳이 바로 '덕고개(德峴)'이다. 덕고개 주민과 갈미, 인덕원 주민들이 과거 구 군포사거리 근처에 있던 군포장(軍浦場)을 보러가기 위해서는 이 곳을 반드시 지나야 했는데, 이 고개를 넘으면 덕이 온다고 해서 덕고개라고 칭했다고 전하고 있다. 이 덕고개는 1936년 3월 서울-과천-남양간 도로개설 당시 현재의 모습으로 낮추어져, 지금은 자동차로 주행할 때 고개의 흔적 정도만 느낄 수 있을 뿐이다. 이 덕고개에서 신 군포사거리를 향하여 진행하다가 오른편으로 약 200미터..

[20231230]안양의집(고아원) 설립자 故 사태현 장로

[복지인물사] 설원복지재단 설립자 故 사태현 장로 기자명 김경옥 한림대학교 일본학연구소 HK연구교수 입력 2023.10.20 14:50 복지타임스에 실린글( https://www.bokjitimes.com/news/articleView.html?idxno=35553 ) 원아들의 ‘아버지’로서 살고 싶었던 복지선구자 故 사태현(1908~2003) 설원복지재단을 설립한 사태현 장로와 부인 김애월 권사 아동 양육시설 안양의집(구 안양보육원)과 안양노인전문요양원이 속한 사회복지법인 설원복지재단을 설립한 고사태현(史泰鉉)은 1908년 이천에서 출생하여 2003년 9월 95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1908년이라는 그의 출생년도에서도 알 수 있듯이 대한민국의 굴곡진 근현대사와 함께 걸어온 그의 일생은 경기도 이천에서 ..

[20231220]일제시대 시흥군 지명수배자 1호 유택윤목사

유택윤 [兪澤潤 1896-1977] 황해도 옹진(연백)출생 1927년 동양선교회 경성성서학원을 졸업하고 은산교회, 석동교회 등지에서 전도사로 시무했고, 1933년에 목사 안수를 받아 인천교회에서 목회했다. 일제시대 안양.시흥군 지명수배자 1호(신사참배 반대)였다. 1941년 의왕 오전리교회 제3대 담임목사 부임 1941년 교회 시무중 신사 참배 반대로 수원경찰서 수감.고문 서대문형무소에 투옥 1945년 해방되던해 석방 1950년 사저 매각으로 안양성결교회 개척(벽돌 교회당) 건축. 1964년 의왕 오전리교회 제11대 임목사 부임 및 1965년 사임 안양성결교회 퇴임후 서울 상도동 성결3교회에 거주후 삼성동 해청아파트에서 별세(자:유병욱자택) 2018년 유택윤 목사님과 이규삼 사모 합장 (서울 불광동 은광..

[최병렬]안양.군포.의왕.과천 막걸리 이야기(2023.12.18)

2023.12.17/ #막걸리 #과천도가/ 관악산생막걸리 2023 크리스마스 에디션 6병을 구입해 이리저리 나누고 성탄절날 한잔 할것을 준비하기위해 추가구입하려 했더니 품절이다. 이런 진작 주문할것을 기회르 놓쳤다. 과천도가에서 만드는 관악산생막걸리 인기가 좋다. 군포에는 가양주작, 의왕에는 오봉막걸리가 있다. 안양에도 안양양조장이 있었다. 기록을 보면 안양양조장은 시흥군 안양리(현 안양일번가)에 있었는데 일제강점기 당시 실업인 윤경섭씨(윤국노 전 국회의원 부친)가 세워 주조계에 이름을 떨쳤었는데 그의 둘째아들인 윤필노씨가 양조장 대표를 할 당시인 1970년대 중반 문을 닫으면서 안양에서의 막걸리 생산의 맥은 끊긴다. 이후 1990년 들어 전통문화발굴 및 관광문화개발 차원에서 전통주에 대한 정부의 규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