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보따리/기억 118

[임희택]어릴적 밀린 방학숙제 몰아치기(2023.01.28)

어린 시절, 그러니까 국민학교 저학년 때... 방학이 시작되면 외가댁으로 보내졌다. 외사촌형들이 귀여워해서 새도 잡아 구어 주기도 하고 나이 차이가 적은 이종사촌과 이곳 저곳 들쑤시고 다니기도 했고 동네 비슷한 연배의 친구들과 쏘다니며 노는 것도 즐거웠다. 큰댁 작은댁은 제법 잘 살아도 우리는 늘 쪼들렸고 외가와 이모님댁도 제법 잘살았지만 우리집은 그렇지 못했던 것 같았다. 물론 상대적으로... 범고개나 가학리 쪽에 사는 친구들도 다 그랬던 것 같다. 그래서 방학만 되면 나는 외가로 이모님댁으로 보내졌고 어머니는 아버지가 방관하는 시멘트 일을 하셨다. 하여간 즐겁게 놀다 보면 한두달이 훌쩍 지나갔고 다시 집으로 돌아올 때가 되면 어머니께서 날 데리러 목천 외가로 오셔서 함께 기차를 타고 돌아 왔다. 철컹..

[임희택]어릴적 밀린 방학숙제 몰아치기(2023.01.28)

어린 시절, 그러니까 국민학교 저학년 때... 방학이 시작되면 외가댁으로 보내졌다. 외사촌형들이 귀여워해서 새도 잡아 구어 주기도 하고 나이 차이가 적은 이종사촌과 이곳 저곳 들쑤시고 다니기도 했고 동네 비슷한 연배의 친구들과 쏘다니며 노는 것도 즐거웠다. 큰댁 작은댁은 제법 잘 살아도 우리는 늘 쪼들렸고 외가와 이모님댁도 제법 잘살았지만 우리집은 그렇지 못했던 것 같았다. 물론 상대적으로... 범고개나 가학리 쪽에 사는 친구들도 다 그랬던 것 같다. 그래서 방학만 되면 나는 외가로 이모님댁으로 보내졌고 어머니는 아버지가 방관하는 시멘트 일을 하셨다. 하여간 즐겁게 놀다 보면 한두달이 훌쩍 지나갔고 다시 집으로 돌아올 때가 되면 어머니께서 날 데리러 목천 외가로 오셔서 함께 기차를 타고 돌아 왔다. 철컹..

[임희택]초등학교 시절 학교앞 군부대와 사격장(2022.05.19)

안서초등학교와 군부대 사격장 학교 앞에 군부대가 들어섰다. 선생님 몇 분과 나 그리고 미경이던가 하여간 두엇이 학생대표로 군부대를 방문하였다. 학교 앞에 웬 군부대냐 하고 따지러 간 것이 아니라 그냥 구경이었다. 요즘 같으면 학부모들이 다 들고 일어날 일이지만 그 때는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았다. 군인아저씨들은 부대 입구 조금 더 들어간 곳에 넓은 상을 차려 놓고 그 위에 칼이며 총기 그리고 수류탄 등을 올려 놓고 구경을 시켜주었다. 정확하게 기억은 안나지만 그게 사학년이던가 오학년 무렵이었는데 그 중 관심있던 권총을 집어들고 이리저리 만져 봤다. 꼬마에게는 제법 무거웠다. 이제 학교에서 육골로 들어가는 길이 막힐 거라고 했다. 하지만 윗동네 아이들과 친목동 아이들은 범고개 윗동네를..

[임희택]어릴적 천봉이와 첫 담배 흡연(2022.05.14)

그의 집 마루에 걸터 앉아 내다 보니 바로 앞은 이제 막 벼꽃이 피는 푸른 논이 펼쳐져 있고 그 논 너머로 물왕골 군자 가는 버스가 다니는 신작로가 하얗게 가로로 놓였다. 제법 더운 날씨일텐데 그의 집 마루는 집 뒤 언덕에서 불어 내려오는 바람으로 시원하였다. "할머닌 어디 가셨는데?" "응. 장에." "시장?" "응." "야. 담배 펴볼래?" "......." "우리 할머니 담배야." 그가 마루 끝 한 쪽에 놓인 곰방대에 봉초를 채우며 씩 웃었다. 그러고는 제법 익숙하게 불을 붙이고는 쭉쭉 소리를 내며 빨더니 훅하고 흰 연기를 내뿜었다. 집에 들어설 때부터 나던 외할아버지 방에서 맡던 쌉싸한 냄새가 바로 담배연기에 찌든 냄새였다. "콜록콜록" 천봉이 내뿜은 연기를 맡고 기침을 하자 그가 댓돌에 툭툭 털..

[임희택]안양동중 통학시절 안양역 마당의 약장수(2020.02.10)

나 중학생 때 인덕원에서 버스를 타고 안양역에서 내려 다시 범고개 지나는 버스를 기다리려면 가끔 보던 풍경. 바람이라도 불면 흙먼지 뽀얗게 흩날리던 안양 역마당에서 빙 둘러 앉아 약장사 구경하던 사람들 틈의 꼬맹이에게 억지로 회충약 먹이고 앉아 있으라하고 잠시 북치고 장구치며 아코디언 연주하는 원맨쑈를 한다음에 애시키 바지 벗겨서 신문지로 한웅큼씩 잡아 뽑곤 하던 그 기생충.... 으~ 기생충을 제목으로 한 영화가 서구에서 꽤 큰 상들을 받았단다. 네 개나.. 반가운 소식이나 사람이 기생충 취급받는 것은 아니 그런 대우를 받는 것은 속히 없어지면 더 좋겠다. 글쓴이 임희택(맑은한울)님은 안양시 박달동 범고개에서 태어난 1963년생 안양토박이로 안서초, 안양동중(신성중), 신성고, 한양대(경영학과)를 졸업..

[임희택]어릴적 추억과기억속의 화수분 논(2023.04.21)

범고개에서 친목동으로 넘어가는 곳에 정수장이 생겼고 그 아래로 안산가는 고속도로 고가다리 밑에 나 국민학교 1학년 무렵에 살던 집이 있었는데 그게 아직도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다. 좁은 마당 끝에는 무궁화나무가 서너 그루 있었고 그 너머로는 거머리가 득실거리는 논이었다. 일명 미나리꽝. 엎드려 팔 하나를 넣으면 거머리 한두마리가 득달같이 달라붙는데 살을 뚫기 전에 잽싸게 뜯어내어 손바닥에 때굴때굴 굴리면서 뒷집 미숙이한테 '야, 니네 집에 그거 핸들 좀 가져와.' 하면 미숙이는 부리나케 달려가서 여자들 아이샤도 바르는 솔 손잡이를 몇개 가져왔다. 이쑤시개보다는 약간 큰 그 프라스틱을 거머리 똥구녕부터 밀어 넣으면 거꾸로 홀랑 뒤집어 지는데 그걸 무궁화 나무 옆에 세워놓아 말리곤 하였다. 우리집에서 안동네..

[임희택]안양 박달리 범고개에서 인덕원 안양동중 등하교(2022.06.09)

구녕 1 범고개 촌에서 국민학교를 마치고 뺑뺑이를 돌려서 중학교엘 가는데 연분홍 구슬. 인덕원에 있는 안양동중(현 신성중)으로 떨어졌다. 앞에는 조수가 떠밀고 뒤에는 차장이 떠밀어 올리는 버얼건 소신여객 시외버스를 공장 다니는 동네 누나들 틈에서 헉헉대며 타고 안양역 시외버스 터미날까지 나와서 과천가는 11번이나 청계가는 12번 버스를 타고 다시 한 번 더 시달리며 등교를 했었다. 하교길은 역순이긴 하지만 나름 재미가 있었는데, 모래먼지 날리는 안양역 앞에서 가끔 약장사가 애들은 가라 하며 효과를 모를 약을 팔던가 혹은 앉아서 구경하는 꼬맹이 불러 세우고 회충약을 먹인 뒤 한바탕 혼자서 아코디안 불며 북치고 장구치다가 꼬맹이 엉덩이를 까고 회충을 한웅큼 잡아내는 걸 보는 일도 재미가 있었고 본백화점 자리..

[임희택]안양 박달리 범고개 주변 옛지명들(2018.09.29)

박달리 범고개. 나 살던 곳. 더 정확히 범고개 주막거리. 논 위로 윗동네. 아래로 아랫동네. 군사격장 가는데 육골. 논 가운데 뉘집 산소 있는 솔밭자리. 큰댁 살던 벌. 큰댁네 집은 이층집. 버스정류장도 그래서 이층집. 고개 위에 더푼물. 벌 밑으로는 솜공장. 쌍7년 수해 때 아까운 젊은 목숨 앗아간 솜공장. 솔밭자리 지나서 돌간산은 학림산. 일직리 저수지 맞은 편에 재경리. 참 그립고 정답던 이름들인데... 글쓴이 임희택(맑은한울)님은 안양시 박달동 범고개에서 태어난 1963년생 안양토박이로 안서초, 안양동중(신성중), 신성고, 한양대(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안양시민권리찾기운동본부 대표 등 시민운동가로 활동하고 맑은한울 별칭의 논객으로도 활동했다. 현재는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이며 사회복지사로, 맑고 ..

[암희택]안양 더푼물 샘과 머리 두개 달린 뱀(2022.05.10)

범고개에서 더푼물까지 가는 고갯길에는 양쪽으로 개나리가 숲을 이루고 있었다. 봄이면 길가가 아주 샛노랗게 꽃장식이 되었었다. 그 개나리숲이 끝나는 무렵, 그러니까 고갯길 정상 무렵 왼쪽으로 더푼물을 들어가는 샛길이 있는데 그 샛길 입구에 어린시절 애들 눈에 제법 큰 향나무가 있었고 그 향나무 아래 작은 옹달샘이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차가 많이 다니지 않을 때니 물이 마실 수 있을 정도로 맑아서 고갯길을 오르며 지쳤을 때는 그 물을 마시기도 하였다. 어느날 나보다 두살 적은 고종사촌 지훈이가 학교 운동장에서 내게로 달려왔다. "형. 더푼물 샘가에서.... 어떤 아저씨가 머리 두개 달린 뱀 잡았다..." "어, 그래?" 그런 뱀이 있다는 소리를 듣기는 했지만 가까운데서 그런 뱀을 잡았다니 호기심이 들었다...

[임희택]안양 더푼물고개와 닭 잡던 날의 씁쓸함(2022.07.05)

어릴 때 키우던 메리가 한 번은 닭을 물고 왔다. 비포장 더푼물 고개를 털털거리며 올라가던 닭차에서 탈출한 놈을 메리가 잡아 물고 온 것이다. 그날 우리도 메리도 닭고기를 먹었다. 집 굴뚝 옆으로 얼기설기 그물망을 엮어서 병아리를 키웠는데 금방 중닭이 되고 어미닭이 되고 그랬다. 그런데 쥐의 소행인지 아니면 족제비의 소행인지 몰라도 가끔 아침에 가슴팍이 뚫려 내장을 쏟아 놓고는 헐떡이는 닭들이 나오곤 했다. 그런 날도 우리는 닭고기를 먹었다. 그 때는 닭잡는 게 참 쉬웠다. 고통스러워 하는 걸 보느니 얼른 확... 안양 시내로 이사를 나온 뒤 닭잡을 일이 없었는데 어느날 뒷방 세들어 살던 민정이던가 정이던가 꼬맹이네 엄마가 나를 불러 내다봤더니 닭이 발을 묶인 채 꼬꼬댁 거리고 있었다. 총각. 닭잡아 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