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124]의왕 부곡 철도관사촌 마지막 흔적
2024.11.19/ #아카이브 #기록 #의왕 #역사 #철도관사촌/ 의왕도심 재개발로 철도관사촌이 몽땅 사리졌다. 근대문화유산이나 다름없는 곳이 흔적도 사리지다니 지역 몇몇 단체들과 문화 인사들이 기념적로 한두채라도 님기려고 애를 썼으나 개발 논리앞에 역부족이었던듯 싶다. 철도관사촌이 존재했던 마지막 흔적을 의왕 문화유산 전시회에서 만나다.
부곡 철도관사촌 이야기
-이 글은 부곡향토문화연구회가 2023년 12월 발간 예정인 부곡가구역 사진집 <마을, 끝나지 않은 이야기>에 수록될 예정입니다. 일제강점기 근대건축물인 부곡가구역 철도관사촌이 재개발로 인해 사라집니다.
관사촌의 탄생
부곡 철도관사촌은 1943년 일제강점기에 의왕지역에서는 최초로 만들어진 근대적인 주택단지입니다. 일제는 태평양 전쟁을 일으킨 후 철도관련 업무 종사자들이 늘어나자 그들을 살게하기 위해 지금의 의왕역 인근에 철도관사를 만들었습니다. 전쟁 중에 용산에 집중된 철도 관련 시설이나 관계자들을 분산시키기 위한 목적이 있었다는 설도 있습니다.
애초에는 대규모 단지로 계획되었는데, 우선 100동, 200세대가 건립되었다고 합니다. 한 동에는 양쪽으로 똑같은 구조로 2세대로 지어졌습니다. 관사1-1호, 관사1-2호, 그리고 관사2-1호, 관사 2-2호 식으로 번호를 정했고 중앙로 남북으로 각기 남관사,북관사로 불렀습니다.
벽에 시멘트를 발랐으며 지붕에는 모두 기와를 올렸습니다. 관사 내부는 현관문을 들어서면 왼쪽 또는 오른쪽으로 작은 방―다다미방―안방(온돌) 등 방 3개가 있었으며 작은 방과 안방에는 창문이 있고 다다미방은 여닫이문이 있어 바깥출입을 할 수 있게 되어 있었습니다. 현관 맞은편 쪽으로 부엌이 있고, 부엌에서는 밖으로 나가는 문이 하나 더 있었습니다. 부엌 옆으로는 내부에 화장실이 있어 추운 겨울 나가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일제강점기에 지은 것이지만 온돌을 설치해서 우리 식 가옥구조를 응용했으며 당시 압록강 변에서 목재를 운반해와 건축자재로 썼다는 기록이 있고 석재는 인근 덕성산에서 채취하여 사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가공하던 시설 유적이 아랫장안말에 있었는데 아쉽게도 장안지구 개발과 함께 사라졌습니다.
해방되고 나서 한국전쟁 이후 철도청의 허가를 받아 우리나라 철도 관련 종사자들이 내려와 살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관사에 내려와 살던 사람들은 대체로 객화차 사무소 직원, 철도 전기수선공, 선로 보수 관계자, 기차역 근무자, 기관사 등이었습니다.
부곡역(지금의 의왕역)
부곡에 철도관사가 들어서고 종사자들이 살게 되면서 이들의 출퇴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경부선 철도가 지나는 부곡에 정거장이 필요했습니다. 이에 따라 조선총독부는 1944년 2월 28일 군포역과 수원역 사이에 새로이 간이 정거장을 설치하였고 3월 1일부터 업무 취급을 개시하였는데 이때 정거장의 이름을 ‘부곡역’이라고 하였습니다.
이후 부곡지역에 들어서는 학교나 기관에 부곡공민학교,부곡초등학교,부곡농협,부곡신협 등으로 ‘부곡’이라는 명칭이 붙는 관행이 생겼습니다. 왕송저수지도 부곡저수지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2004년에 의왕시는 역명을 부곡역에서 의왕역으로 변경하였습니다. 당시 의왕시는 군포 부곡지구에 대단위 아파트단지가 건립되자 역명의 주도권 상실을 우려하여 이에 대한 대응으로 변경한 것으로 보입니다.
관사촌의 변모
부곡 철도관사촌은 1990년대 이후 급격히 변모합니다. 관사가 해체되고 빌라들이 들어서기 시작한 것입니다. 1989년-1990년대 초 200만 호 건설 이후 90년대를 지나며 계속 관사가 사라졌습니다.
당시 관사 한쪽 140여 평 되는 부지에 빌라 2동이 들어섰고, 건설업자들이 매입해서 진행하는 것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살던 분들은 새로 지어진 아파트나 다른 곳으로 이주했고 일부는 주인이 거주하는 공간도 함께 지어진 곳도 있었는데 그것마저 훗날 새로운 빌라로 바뀐 곳이 많습니다. 지금 남관사에 그런 곳이 많습니다.
빌라가 신축되는 과정이 이어지면서 소방도로를 확보해야 했고 이로 인해 지금의 능애고개길도 생겼습니다. 이제 곧 능애고개길도 사라질 운명입니다.
관사촌에 살던 사람들은 대부분 외부로 출근하던 분들이 많았고 나중에는 대우중공업에 다니는 분들도 늘어 났습니다. 아침, 통근기차를 타기 위해 줄줄이 부곡역으로 향하던 사람들의 행렬이 선합니다. 역 승강장은 사람들로 넘쳐났습니다. 휴일에도 왕송저수지에 낚시를 하기 위해 수도권 사람들이 몰려들어 역전은 붐볐습니다.
그러다 인근 평촌과 산본 신도시가 개발되면서 부곡지역은 개발에서 소외된 지역으로 침체를 겪었습니다. 주민 의사와 상관없이 대규모 철도기지와 내륙화물기지가 들어섰고 철도로 발전을 시작한 지역이 이로 인하여 발전이 저해되는 아이러니의 역사도 겪었습니다.
지금도 철도특구의 위상을 가지고 있는 곳이 부곡지역이며, 이것의 출발이 철도 관사촌이었습니다. 부곡향토문화연구회는 사진을 남기고 이야기를 채록해 놓고 있습니다. 이것은 일제강점기에 걸친 근대 마을이야기로 후손들에게 남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