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유원지 46

1980년 안양유원지 낙원마을 화심천 용왕제

#안양 #기록 #기억 #역사 #만안구 #원도심 #동네 #골목 #안양2동 #안양유원지 #안양예솔공원 #1980년/ 안양2동 관악산 끝자락 산비탈에 있는 안양 낙원마을의 1980년대 풍경. 사진 우측으로 멀리 굴뚝이 보이는 곳이 유유 안양공장(현 김중업박물관)이고 그 아래는 삼성천이 흘러 가며 사진 좌축으로 보이는 동네가 석수2동 지역이다. 당시 낙원마을은 기와집 40여호가 정도가 있었는데 수질이 좋은 우물이 있어 화심천이라 짓고 1993년 수돗물이 들어오기가까지 40여년간 동네 주민들의 식수원이 되기도 했다. 낙원마을은 1999년 안양시에 의해 전통마을로 지정받을 만큼 화심천 용왕제를 비롯 절기 또는 명절 때마다 마을합동으로 풍습을 재연하면서 마을공동체의 의미를 되새겨 왔으나 2005년 이후 개발의 바람앞..

1960년대 말 안양유원지 딸기포도밭

#안양 #역사 #기록 #기억 #골목 #안양유원지 #옛사진 #1960년말/ 사진은 1960년대 말에서 1970년대 초반 안양유원지 초입의 모습이다. 현재 안양예술공원 주차장이며 사진 좌측으로는 유유산업 안양공장, 사진 중앙 뒷쪽의 나무가 우거진 바위는 마애종이다. 바위 아래 이정표 간판에 딸기포도밭이라 쓴 글처럼 안양유원지 주변에는 포도밭과 딸기밭이 즐비했다. 잡초를 뽑고 있는 듯한 머리수건을 쓴 여성들은 유유 안양공장에 근무하던 직원들로 보인다.

1960년대 초 유유 안양공장(현 김중업박물관)

#기록 #기억 #안양 #안양유원지 #안양예술공원 #유유 #김중업 #옛사진/ (사진출처 및 촬영자 미상) 아주 오래된 흑백사진 한장이 시공을 넘어 과거속으로 시간여행을 하게 한다. 안양유원지(현 안양예술공원) 초입에 있던 유유 안양공장(현 김중업박물관)의 초창기 모습으로 통일신라 '중초사(中初寺)'이래 고려 '안양사'로 이어져 조선까지 불맥을 이어간 사찰지위에 한국 건축계의 거장 고 김중업씨가 설계한 제약공장 건물들이다. 공장동 뒷쪽으로 개인주택들이 있고 사무동 뒷편에는 공장 신축 당시에는 없던 가건물이 들어선 것으로 보아 1960년대 초반으로 추정된다. 유유 안양공장 터는 중초사(통일신라), 안양사(고려)가 자리했던 절터로 유유 창립자인 유득한 씨가 1941년 매입해 6.25전쟁 이후인 1959년 5월 ..

1968년 여름의 안양유원지 공짜풀장앞

#안양 #안양유원지 #안양예술공원 #닐미샬로프(http://www.mishalov.net/) #기록 #역사/ 여름철 피서지로 한해 40-100만 인파가 몰렸던 1968년 안양유원지의 여름 풍경으로 당시 석수동 미군부대에 근무했던 닐 미샬로프씨가 코닥 슬라이드필름으로 촬영한 사진입니다. 사진 나무 뒷쪽은 당시 공짜풀로 뚝을 경계로 오른쪽은 제1풀 오른쪽은 제2풀이라 불렀지요. 공짜풀은 1977년 대홍수로 처참히 파괴되고 이후 안양시의 유원지 재개발사업으로 모습이 완전히 바뀌고 말았지요. 사진 위치는 현재 관악교 다리 아래쪽을 추정됩니다. 길 건너편에는 당시 왕실캬바레가 있던 데이지아 카페가 있는 곳으로 사진 속 나무는 40년의 새월이 지나면서 아름드리로 커졌지요. 나무 밑에서 자동차 타이어속의 고무 쥬브를..

1960년대 1번 국도와 안양유원지 가는길

#안양 #기록 #기억 #역사 #옛사진 #안양유원지 #안양예술공원 1970년대 초까지만 하더라도 수도권 시민들의 여름철 피서지로 각광받던 안양유원지(현 안양예술공원) 입구인 안양교 사거리의 1960년대 말 모습으로 안양유원지 개장을 앞두고 도로정비 공사가 한창입니다. 사진속 아치가 서 있는 자리는 현재 안양예술공원 지하차도이며, 사진 아래 의 비포장도로는 당시 안양읍내를 관통하는 유일한 도로였던 1번국도(현 만안로)로 왼쪽은 서울방향이며 오른쪽은 안양역 방향입니다. 당시에 사진 왼쪽에는 현 삼막천으로 이전복원하기 전의 만안교 다리가 있었으며, 그 위로 자동차들이 지나다녔습니다. 아치 뒷쪽으로는 경부선 철길인데 사진 오른쪽에는 피서철에는 운영되는 안양유원지 임시 정거장이 설치돼 있는 모습이 보입니다. 열차가..

1969년 안양유원지 만안각수영장

#기억 #기록사진 #안양 #안양유원지 #만안각수영장/ 1969년 찍은 안양유원지에 있던 만안각 수영장의 모습입니다. 안양유원지는 1960-70년대 여름철이면 국립도서관 임간문고에 임시우체국이 설치되고, 안양유원지입구에는 임시 기차역이 생겨 한해 피서객이 100만명에 달할 정도로 수도권 최고의 피서지였지요. 만안각 수영장은 현재의 블루몬테(수련원)과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산자락에 자리하고 있었는데 대영풀장, 맘모스 수영장, 관광호텔 수영장(70년 이후에 생김)과 함께 안양유원지에 있던 5개의 유료 야외풀장중에서 가장 컸지요. 만안각 수영장에는 수영장 뒷편 산자락에 가족 단위로 쉴 수 있는 방가로들이 있었는데 사진 뒷편에 보이는 작은 집들이 그곳으로 애정 표현 장면을 훔쳐보는 이들도 많았다고 합니다

1968년 안양유원지 가는길옆 아이스크림 장수

#안양 #안양유원지 #여름 #닐미샬로프 #기록/ 지금이나 예전이나 무더운 여름철이 오면 시원한 것으로 찾지요. 1968년 7월 안양유원지 들어가는 길의 풍경으로 아이들의 시선이 아이스크림에 팍 꽂혔습니다. 지금으로부터 반세기전의 모습이니 사진속 주인공들은 이제 60세의 어른들이겠지요. 이 사진은 당시 안양 석수동 미군부대인 제83보급대대에서 우편물 수송담당으로 근무했던 주한미군병사 닐 미샬로프(Neil Mishalov)씨가 컬러슬라이드로 찍은 너무나 귀한 기록사진입니다. 제 유년시절의 기억으로는 당시에 안양읍내에는 태극당과 미승당, 풍미당 제과점에서 아이스께끼와 하드를 만들어 팔았는데 까까머리 고학생들이 길거리에서 안에 스티로폴을 넣은 나무께끼통을 어깨에 메고 '께끼나 학드'를 외치고 다녔지요. 그때도 ..

1970년대 김중업 설계 유유 안양공장 전경

2013년 10월 19일 안양예술공원의 안양파빌리온 안내데스크 뒷편에서 빛바랜 한장의 사진 판넬을 발견했다. 1970년대 촬영한 것으로 추정되는 (주)유유 안양공장(안양시 만안구 석수동 212) 건물이다. 중초사지 절터를 유유 창립자인 유득한 씨가 1941년 매입해 6.25전쟁 이후인 1959년 5월 안양공장을 건립한 후 2007년 제천으로 이전하기 까지 운영되어 왔다. ㈜유유 안양공장에 자리한 사무동과 공장동 건물은 한국의 손꼽히는 건축가 김중업(金重業,1922∼1988)의 초기작품이자 50년대를 대표하는 산업건축물로 어려운 시대에 공장에 예술을 가미해 건축했다는 것은 높은 안목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평가받고 있다. 특히 사무동 지붕은 역보로 되어 있고 생산동은 캔트리버로 형성 삼성천의 시야를 확..

1970년대 안양유원지 여름경찰서 개소식

1970년대 초 안양유원지(안양 예술공원)의 여름경찰서 개소식 풍경입니다.1960-70년대 안양유원지에는 한해 평균 70-100만의 수도권 피서객이 몰려들 정도로 혼잡을 이루었기에 안양경찰서 여름경찰서, 안양우체국 임시출장소, 국립중앙도서관 임간문고 등이 설치되고, 철길이 지나는 현재의 안양예술공원지하차도 위쪽(안양철교옆)에는 안양유원지 임시역이 세워져 매시간 열차들이 정차하고 합승버스가 운행되기도 했지요. 제 기억으로는 당시 여름경찰서가 들어선 자리는 맘모스수영장 옆으로 기억하는데 현재로는 폭포가 있는 벽천광장 위에 25시 체인점 앞쪽에 자그마한 건물이 있었지요.

1969년 안양유원지 유료풀장 만안각수영장

1969년 여름의 안양유원지(현 안양예술공원) 풍경으로 1977년 안양대홍수로 처참하게 파괴된 후 지금은 그 흔적도 찾기 어려운 만안각 수영장으로 그야말로 물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바글바글합니다. 수영장 뒷쪽 산으로는 20여채 정도의 방갈로도 있었지요. 1932년에 개장한 안양유원지는 1960-70년대 서울과 수도권 주민들의 여름철 피서지로 체신부가 우편출장소를, 국립도서관은 임간문고를, 철도청은 안양유원지 입구에 임시역까지 설치했었지요. 관보를 보면 1966년 여름피서철인 8월 6일-28일까지 토요일.공휴일에 경부선 안양 풀 임시승강장(시흥~안양역, 안양풀입구)이 운영됐으며, 1967년에는 7월 14일부터 8월 20일까지 여객을 받는 등 안양 풀 임시승강장은 1969년에도 운영했다는 기록이 있네요. 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