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지역얘기/담론

[배기철]안양의 도시 미학에 대해

안양똑딱이 2016. 5. 3. 17:03
[배기철]안양의 도시 미학에 대해

안양지역시민연대 회원. 건축사


 

1.
오늘 오후 서울 시청 앞을 지나면서 과거와는 분명 다른 느낌을 가질 수 있었다. 수많은 군중을 대신하여 차량들이 그 공간을 차지하였지만, 어디 선가“대~한민국”이란 우렁찬 소리가 들려왔고 붉은 물결이 넘쳐 나던 그 젊음과 열정을 다시 느낄 수가 있었다. “아~ 그 뜨거움!” 가슴 벅찬 멋진 기억이다. “덕수궁 돌담길”이란 국민적 장소에 뒷전으로 밀려나던 과거와는 달리, 시청앞 광장은 당당하게 그러면서도 우리들의 지난 수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듯 하였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토록 건조하던 교통광장이 우리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담을 수 있는 기억할 만한 장소, 세계적인 주목을 받는 장소가 되었는가?

현대생활에 있어 도시적 환경은 우리의 삶과 절대 분리할 수 없는 매우 중요한 것이다. 때문에 우리의 삶은 그 도시의 수준에 의해서 영향을 주고받게 된다. 도시로서의 기본적인 경제적 생활을 할 수 있는 기능적 도시로 부터 생활과 안전을 보장 받을 수 있는 안전한 도시, 그리고 풍부한 녹지와 쾌적하고 아름다움을 지닌 생태적 도시 등 그 성격도 다양하다. 그러나 진정으로 “살만한 도시”가 되기 위해서 빼 놓을 수 없는 것은 바로 도시의 전통과 문화의 정체성(Identity)이며, 이는 지방자치제가 정착되면서 더욱 더 중요한 문제로 제기되고 있다.

‘ 살고 싶은 도시, 자랑스러운 시민’은 안양시의 슬로건인데 본래 “안양”이란‘마음을 편하게 하고 몸을 쉬게 하는 극락정토의 세계로 모든 일이 원만 구복하여 즐거움만 있고 괴로움은 없는 자유롭고 아늑한 이상향’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그렇다면 안양시의 모습은 과연 그러한 문화적 전통, 아름다운 기억과 체험을 누릴 수 있는 단서를 시민들에게 충분히 제공하고 있는 가 ? 단순 편리성을 넘어서 진정한 삶의 가치를 이곳에서 발견하고 정주성을 갖춘 도시인가 ? 모든 도시들이 환경과 생태적 공간에 대한 관심을 쏟고 있는 상황에서, 안양시의 모습은 마음을 편하고 즐거움이 있으며 자유로움을 구현할 이상향의 도시인가 ? 특히 이번 월드컵때 서울 시청앞 광장에서처럼 우리의 뜨거운 열기를 자연스럽게 발산할 수 있는 그런 도시적 공간을 갖춘 도시인가?

2.
앞만 보고 질주하던 우리는 도시개발을 경제적 논리에 기반을 둔 양적인 팽창에 관심을 기우려 왔고, 그 결과 우리의 도시들은 기형적으로 발전하여 여러 사회적 문제를 야기시켰음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도시의 자족성, 정주성과 더불어 최근 대두되고 있는 자연 친화적 도시, 생태환경적 공간에 대한 관심은 도시의 발전을 단순 물리적인 수치로 해석하던 관행을 바꿀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IMF를 거치면서 세계경제와 국가 경제가 위축되었던 반면,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생존을 위해 외자 또는 벤쳐 사업단을 모집하는 것과 같은 다각적인 시도가 있었으나, 실질적 성과를 거둔 사례에 대한 소식은 거의 없는 듯하다. 그보다는 지역의 문화성에 관심을 도시들은 각종 사회적, 문화적 이벤트를 기획하고 유치하여 실질적인 도시의 경제적 성장과 개성 있는 도시로서의 이미지를 만드는데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고 있다.

‘인간을 위한 도시 만들기’로 유명한 덴마크의 도시환경 디자이너 얀 겔(Jan Gehl)은 ‘인간의 3가지 활동’ 중에서 매력적인 도시는 ‘필요한 활동’에 가능한 많은 수의 ‘선택가능 한 활동’ 과 ‘사회적 활동’이 공존할 때 성립된다고 주장한 바 있다. 학교나 직장을 가기 위해 버스나 지하철을 이용하는 것처럼 반드시 생활에 필요한 것 이외에, 좋은 경치를 즐기며 거닐 수 있는 공간이라든지 길거리 카페에서 한잔의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선택적인 활동’과 도시에서 매일 일어나는 갖가지 일을 경험하고 각종 집회 이벤트와 행사, 퍼레이드등 사소한 일에서부터 공공성 있는 집회에 이르기 까지 다양한 형태의 행위를 담을 수 있는 ‘사회적 활동’이 많으면 많을수록 도시는 아름다우며 다각적인 삶을 영유할 수 있음을 그는 지적하고 있다.

이런 도시의 사회성 또는 문화성은 도시를 구성하는 건축물, 옥외공간, 그리고 가로에서 나타나는데, 이는 단순히 물적인 아름다움이나 도시적 경관의 아름다움을 넘어 그 속에서 시대적 삶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드러나게 된다. 때문에 도시의 경관과 도시적 문맥(context)이 강할 때 도시의 문화성은 그만큼 높은 것이며, 도시의 문화적 정체성과 개성(Character)은 현대 도시 평가할 수 있는 중요한 요소중의 하나이다.

도시적 맥락이 없는 도시에서는 삶의 가치를 발견하기란 참으로 어렵다. 천편일률적인 오늘의 도시 모습, 특히 아파트가 많은 신도시에서는 이곳이 평촌인지 산본 인지, 일산인지 분당인지 그 차이를 알기가 참으로 어렵다. 사람들은 도시에서 단순히 생존만을 위해 사는 것은 분명 아니다. 물론 도시가 훌륭한 교육시설, 첨단의 기술 산업, 다양한 쇼핑 몰과 백화점, 대규모의 문화시설 을 갖춘다면 좋겠지만 반드시 그러한 요소들로만 좋은 도시가 되는 것은 절대 아니다. 그보다는 우리들은 자기가 사는 도시에 대한 자부심을 느낄 수 있어야 , 그 도시에 속해 있다는 강한 소속감과 정체성이 있어야만 실질적인 행복감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3.
이야기를 안양의 (구)가축위생연구소로 좁혀 보자. 시민단체들이 중심이 되어 도심공원으로 만들자는 운동을 전개하여 작년 말 나름대로 표면적 성과를 거둔 것은 참으로 고무적인 사건이다. 그러나 단순히 녹지공간이 만들어 진다고 그곳이 우리가 좋아하는 멋진 그런 장소가 되고 살기 좋은 도시가 되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지금부터이다.

구 가축위생연구소의 대지를 문화 예술공간으로 만들어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안양의 도시구조는 지나치게 단순한 단핵적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시민들의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킬 도시조직이 필요하다. 도시구조상 남북방향으로 발전 성장해 온 만안구는 북쪽의 안양일번지 지역의 상업기능과 남쪽의 만안구청일대의 행정 문화기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 두 핵심적 공간을 잇는 중앙로는 삶의 행위를 유발할 만한 아무런 도시적 단서를 제공해 주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폭 40m가 넘는 중앙로에는 자동차만이 넘치고 거리의 표정은 혼잡함만이 있을 뿐이다. 가로수와 각각의 간판에서 보이는 혼돈 속에서 여유롭고 풍성한 도시적 자극을 기대하기란 무리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길거리 공연 등을 개최하여 문화 상징거리로 육성”하겠다는 안양시의 피상적인 정책보다는 보다 이번 월드컵에서 시민이 자발적으로 참여하여 바로 그 주인공이 되었던 그런 물리적 자극과 도시적 환경이 중요하다.

물론 최근 안양역세권 개발을 통해 활성화를 꾀하고 있지만 안양의 경제, 문화 활동의 중심지 였던 안양 역 주변, 화단극장과 중앙성당의 장소성은 그 자취를 감추어 버린지 오래다. 또한 역주변에 거대한 옥외골프연습장 설치로 인해 과거의 전원적인 아름다운 풍경 또한 발견하기 어렵다. 안양의 명소였던 과거의 유적지 역시 방치되고있어 시민들은 인근도시의 위락 또는 문화 시설을 찾고 있다. 때문에 안양을 상징하고 대변할 수 있는 다양한 문화 복지 공간들이 시급히 마련되지 않는다면 안양은 자족도시로서의 기능을 할 수 없는 베드타운으로 공동화 현상을 일으킬 여지가 있으며 다른 신도시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문화적 취약성을 드러내고 있다. 이러한 문제들을 극복할 수 있는 하나의 대안으로서 가축위생연구소 부지가 안양문예회관과 연계되어 문화예술공간으로 시민들에게 제공된다면 다중적 구조를 갖춘 보다 밀도 높은 도시로서의 성장 잠재력을 보유할 것으로 판단된다.

이러한 이유로 때문에 이곳에 건립될 20여층 규모의 벤처빌딩은 일개의 학교재단에 운영되는 한 집단의 시설이기 보다는 공공적 성격이 강하게 부여된 건물이 되어야 할 것이다. 저층부는 대지와 인접한 동사무소나 등기소 같이 시민들의 편의를 제공할 수 있는 시설을 만들어야 하고 안양문예회관과 연계할 수 있는 각종 문화적 요소들을 유치하여 시민들이 24시간 자유롭게 찾을 수 있으며 만남의 장소로 활용되어야 한다. 또한 건물 뒷편에 위치할 공원과도 물리적으로 뿐 아니라 시각적으로도 잘 연계될 수 있도록 개방감과 투명한 구조를 갖출 필요가 있다. 지하 주차장과 같은 시설을 설치할 때에도 전면의 도로와 후면부의 공원이 단절되어서는 절대 안되며 이식되어야 할 수목들도 잘 관리되어 항상 푸른 깨긋한 환경을 제공하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이와 아울러 문예회관과 적극적으로 연계될 수 있는 복합적인 마스터 플랜을 마련하는 것도 필요할 것이다.

도시는 그곳에 사는 사람을 위해서 건설되는 것이다. 도시는 사람과 사람이 협력해서 만들어 지는 것이며 어떤 하나의 건물 또는 공장만으로 만들어 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오늘날 도시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지식의 적용보다는 지혜를 요구한다. 도시는 인간과 건축 그리고 자연의 매개체 속에 성장하는 유기체이며, 도시를 계획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유기체에 대한 본질적인 이해가 요구된다. 현대건축이 실패했던 이유나, 최근 논의되고 있는 청계천 복원 문제나 가축위생연구소 문제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대부분의 도시에서 나타난 문제들은 바로 그러한 도시생활의 근본에 대한 이해를 충분히 고려치 못한데 기인하고 있음을 다시 생각해보아야 한다.

배 기 철(KiCheol Bae)

62년 서울 출생으로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조소과와 중앙대학교 건축미술학과에서 미술학사와 미술학석사를 받은 후 1991년 도미하여 시카고에 있는 일리노이공대(Illinois Institute of Technology)에서 건축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코스마 디자인 연구소, 삼우설계, NWS(시카고), TLPA(미내아폴리스)를 거쳐 Ellerebe Becket(미네아폴리스), RTKL(로스엔젤레스) 등에서 프로젝트 디자이너로 근무한 바 있으며 99년 귀국하여 현재 ㈜ids 건축사사무소를 운영하면서 중앙대학교 건축공학과 겸임교수로 일하고 있다.

2003-05-28 10:05: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