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머신 814

[20250709]의왕 고천동 왕곡리 새마을회관 1972년 모습

2025.07.09/ #아카이즈 #옛사진 #의왕 #기록 #since1972/ 의왕 고천동 왕곡리에 있던 새마을회관. 사진출처: 의왕문화원 사진아카이브/ 1970년대 대한민국 농촌에 울려 퍼진 "새벽종이 울렸네, 새 아침이 밝았네"로 시작하는 새마을노래는 잠들어 있던 농촌을 일깨우고, '더 나은 삶'에 대한 새로운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는 변화의 신호였다. 박정희 정부가 열정적으로 추진한 새마을운동은 단순한 환경 개선을 넘어, 농민들의 의식을 고취하고 삶의 질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려는 대담한 프로젝트였다. 오랫동안 가난과 낙후의 그늘에 갇혀 있던 농촌은 이 운동을 통해 새로운 활력을 되찾았고, 우리 부모 세대의 땀과 열정이 어우러져 감동적인 변혁의 이야기를 써 내려갔다.

[20250704]1960년대 안양풀로 소풍 나온 이은섭님 가족

2025.07.04/ #아카이브 #옛사진 #기록 #안양유원지 #since1960/ 1960년대 안양풀(안양유원지)로 소풍 나온 이은섭 님 가족. 사진은 1960년대 초중반에 찍은 사진으로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과거 안양유원지 모습이 담겨 있다. 사진 뒷편 돌로 계단깉은 석축을 쌓은 곳이 1932년 조성한 안양풀장(무료)이다. 사진속 풀은 제1풀(성인용)이며 윗쪽으로 제2풀(아동용)이 있었다. 사람들이 서잇는곳은 1풀장앞으로 가로지르는 아나방 다리(철판에 구멍이 뚫린 미군용 강판다리)다. 다리 뒷쪽 풀장 제방 가운데 대형 바위가 보이는데 지금도 현존하는 안양풀 표지석(일본어로 안양풀이라 쓰여져 있음)이다. 사진속 인물들은 수많은 안양 사람들의 결혼식이 열렸던 신도예식장(안양1동에 있다가 폐업)을 운영..

[20250704]의왕 왕곡동 초입에 있던 청풍김씨 묘문비각

2025.07.04/ #아카이브 #옛사진 #기록 #청풍김씨묘문비각 #의왕 #since1989/ 의왕 왕림마을 입구에 있던 청풍김씨묘문비각/ 이 비는 청풍김씨 묘문으로 속칭 사면비이고 글씨체는 석봉공 한호의 글씨를 집자하였다. 조선 영조대왕 시절에 영의정을 역임하신 고정공(휘 치인. 시호 헌숙1716~1790)께서 1760년경 선영의 묘소에 석물을 설치할 시기에 함께 세운것으로, 원래의 자리는 삼남길에서 마을 초입인 복죽동 노변(왕곡동 604 왕곡초교 운동장)에 있었다. 묘문과 더불어 하마석이 노변(왕곡동296-2)에 있었으나 1978년경 개발로 유실되었다. 하마석의 크기는 가로4자 세로3자 두께2자의 크기이고 화강석으로 되어 있었다. 묘비는 1995년에 도시계획에 의하여 개발되면서 왕곡동 76에 이전하였..

[20250630]행정구역과 지명 모두 없어진 옛 시흥역(1954년)

2025.06.30/ #아카이브 #옛사진 #시흥역 #since1954/ 과거 시흥군 시절의 시흥역(현 금천구청역). 19300-40년대 시흥보통학교가 6년제, 안양보통학교가 4년제이던 시절 안양에 살던 학생들이 시흥보통학교로 다니면서 통학하던 역으로 경부선이 개통되던 구한말 1905년~1910년 무렵에는 안양역 보다 규모가 컸다. 옛 시흥은 과거 시흥군이 해체될 당시 마지막까지 남아있던던 소래읍 등 행정구역이 시흥시로 분리되면서 조선시대부터 시흥땅이던 시흥역을 비롯 서울 금천구 시흥동 등 지명을 빼앗기고 말았다. 1908년에 시흥역이 개업했을 때에는 여기가 시흥군의 중심이었다. 이 때문에 '시흥역'이 되었는데, 정작 개통 3년 만에 군청을 영등포로 옮겨서 중심지 또한 영등포로 옮겨졌다. 경성부가 193..

[20250627]1937년 8월 5일 안양풀(현 안양예술공원 계곡)

2025.06.27/ #아카이브 #옛사진 #기록 #안양풀 #since1937/ 안양예술공원(안양유원지) 초창기 당시인 1937년 8월 5일에 찍은 삼성천 계곡의 모습으로 당시 안양풀장(제2풀) 위쪽에서 찍은것으로 추정된다. 사진속 계곡 바닥에 깔린 넓찍한 너럭바위를 볼때 현 관악교(싸리골식당앞) 주변으로 보인다.사진속 인물들은 당시 시흥군 안양에 사는 부잣집 청년들로 안양풀로 놀러온듯 싶다. 양복에 게다짝을 신은 모습이 가관이다.

[20250626]1930년대 삼성산 등산후 안양풀서 기념사진 한컷

2025.06.26/ #아카이브 #옛사진 #일제강점기 #안양풀/ 일제강점기 당시 1930년대 삼성산 등산후 안양풀(1932년 현 안양에술공원 초입의 계곡을 막아 만든 풀장)에서 가념사진을 찍은 청년들. 머리에 교모를 쓴것으로 볼때 당시 고둥학생들로 추정된다. 사진에 쓰여진 글씨에 황기 2601년 등이 쓰여져 있는데 해독 불가. 년도와 출처 불명, 일행이 서있는 곳은 안양풀 수문이 있는 곳이다. 수문앞에는 커더란 암반(바위)이 있는데 일본어로 안양풀(安養プ―ル)이라 글자를 새겨 표지석을 만들었다. 이 표지석은 지금도 현존한다.사학자로 의왕문화원 향토문화연구소장인 박철하 박사가 페북 사진을 보고 1941년이라 알려옴, . 안양풀 톺아보기 https://ngoanyang.or.kr/9853

[20250625]1950년 한국전쟁 북진시 군포~안양 통과 미군

2025.06.25/ #아카이브 #옛영상 #기록 #한국전쟁/ 6.25 한국전쟁 당시 1950년 9월경 북으로 진격하는 미군과 탱크가 구군포(현 호계사거리)에서 안양읍내를 지나가는 모습이 담긴 영상기록중 한 컷. 사진 좌측 하단에 군포장 이정표 팻말이 보인다. 영상에는 경부선 기찻길과 1번국도와 안양역 등 안양읍내를 지나 석수동 까지의 주변 모습이 담겨있다.유튜브 영상보기 https://youtu.be/2VOL2xdmaQs?si=t5Wd312Y9sQaw1Uw

[20250621]1970년대 수영객 인파로 북적였던 안양유원지

2025.06.21/ #아카이브 #안양 #since1970년대 #안양유원지 #안양에술공원/ 안양시 만안구 석수동 안양예술공원의 전성기였던 안양유원지 시절의 1970년대 모습으로 경기도 멀티미디어자료실에서 입수한 기록이다(경기도 기록에는 사진 촬영일이 1967년 8월1일로 되어있으나 1967년에는 사진속 건물(안양관광호텔)을 짓기도 전이라는 점에서 이는 틀린 기록이다) 사진을 찍은 곳은 맘모스수영장(현 커피플래닛 건물)으로 수영객 인파로 그야말로 바글바글하다. 사진 윗쪽으로 보이는 산이 삼성산 자락이다. 사진 중간 왼쪽에 보이는 건물은 1970년 문을 연 안양관광호텔(현 블루몬테)이며 호텔 건물 아래 천막들이 설치된 곳이 야외수영장인데 안양유원지 인공풀(유료수영장)중 가장 늦게 완공됐으며 시설 또한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