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풀*1944)-안양유원(1969)-안양예술공원(2006)
1933년 개장한 '안양 풀'은 바위돌과 콘크리트로 뚝을 쌓아 성인용과 어린이용 2조의 천연수영장을 만들고 계곡 양쪽에 계단식으로 돌을 쌓아 피서객들이 휴식을 할 수 있도록 했으며, 뚝에는 청소 등을 위해 물을 빼낼 수 있는 일종의 문을 만들어 놓기도 했다.
풍부한 수량과 숲으로 1920년 부터 여름철 피서지였던 삼성천 계곡에 공짜 천연풀장이 생기자 인기는 폭발적이다. 1960년대 유료수영장이 서너개 생기자 1970년대에는 한 해 평균 100만 명이 몰리는 서울과 수도권 인근 여름철 피서지로 각광과 명성을 날렸다.
관보를 보면 1966년 여름피서철인 8월 6일-28일까지 토요일.공휴일에 경부선 안양 풀 임시승강장(시흥~안양역, 안양풀입구)이 운영됐으며, 1967년에는 7월 14일부터 8월 20일까지 여객을 받는 등 안양 풀 임시승강장은 1969년에도 운영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특히 안양지역 원로인 변원신(78) 선생은 1933년 안양 풀이 생기자 당시 "일제가 서울에서 안양풀행 철도를 운영했다"도 증언하고 있어 안양 풀의 유명세를 짐작할 수 있다.
이는 해방 이후 서울과 수도권 시민들의 피서지로 이어져 1967년 7월29일자 <매일경제>에 안양유원지에는 하루 평균 4만여명(일요일 10만)의 피서객이 몰리고 서울에서 당일코스로 40원이면 왕복할 수 있고, 기차도 매시간마다 입구에 정차했다고 기록돼 있다.
또 1963년 7월17자 <동아일보>에는 국립도서관이 피서객을 위해 안양유원지 풀장에 7월26일부터 8월14일까지 임간문고를 설치해 운영했으며, 1968년 6월8일자 <동아일보>에는 체신부가 6월10일부터 8월30일까지 안양우체국 임시출징소를 운영한 기록도 있다.
1976년 3월25일자 <경향신문>에는 안양유원지에 해마다 100만명의 인파가 몰려들자 입장료를 받기로 했다는 기록도 있다.
안양 풀이 쇠락의 계기를 맞은 것은 1960년대 말 상류에 대형풀장, 맘모스풀장, 만안각 풀장 등 인공풀장이 들어서고, 또 행락객들이 버린 오물들이 제대로 처리되지 못하면서 자연하천인 삼성천이 오염되어 자연풀장이 그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되면서 부터다.
또 1969년 1월 21일 국민관광지로 지정돼 입구에 아치모양의 철구조물로 '안양유원지'라는 간판이 나붙고 '안양 풀' 대신 '안양유원지'라는 명칭을 처음 쓰기 시작했으며 경기도관광협회 안양유원지지부가 결성되어 입장 수입으로 유원지를 관리하게 된다.
그러나 1971년 7월 30일 개발제한구역(일명 그린벨트)으로, 1973년에는 도시자연공원으로 지정되어 건축 및 재건축이 억제되는 특별관리하에 들어가면서 발길이 뚝 끊긴다.
더욱이 1977년 사상 유례없는 안양 대홍수는 기존 안양유원지 계곡의 경관을 참혹하게 파괴하고 지나갔다. 이로인해 안양 풀은 상류에서 내려온 토사와 자갈, 대형 바위돌로 메꾸어지고 휩쓸리며 완전히 자취를 감춰서 결국 잊혀져 버리는 계기가 되고 말았다.
아름다운 자연의 풍광을 잃어버린 안양유원지는 이후 계곡을 넘칠 정도로 풍부하던 수량도 줄어들면서 인적이 끊긴 유원지로 전락하자 결국 교통부는 1984년 11월 28일 국민관광지 지정을 취소했으며, 안양유원지의 번창과 영화는 지난 추억의 이야기가 됐다.
안양시는 1994년 유원지의 명성을 되찾고, 지역경제활성화 및 지역개발 차원에서 다시금 바라보기 시작했다. 특히 1995년 지방자치의 실시로 민선시장체제가 출범하면서 유원지 정비 및 개발계획은 주요 공약의 하나로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는 계기가 된다.
안양시는 2005년 APAP(공공예술프로젝트) 사업을 통해 안양유원지를 단순 휴식공간 차원을 넘어 자연과 사람이 하나가 되고 거기에 예술까지 결합된 국제적 명소로의 완전 탈바꿈을 시도했으며, 명칭공모를 통해 2006년 '안양예술공원'으로 명칭을 변경한다.
하지만 2000년 안양유원지 정비사업 과정에서 보존보다는 개발에 치중해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던 안양 풀의 둑과 계곡 양 측면으로 조성된 돌계단의 휴식공간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이제 바위에 새겨진 안양풀(安養プ―ル)'이라고 쓰인 기록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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