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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02]안양 박달군용지, 우리나라 최초 원자로 후보지였다

안양똑딱이 2024. 4. 2. 17:51

1968년 안양 박달군용지(닐 미샤로프사진)

 

고 이승만 전 대통령은 원자폭탄에 관심을 갖고 우리나라 최초의 원자로(연구용 원자로)를 서울에서 떨어진 진해, 안양 등지에 세우려고 했다. 그러나 미국측의 반대로 결국 서울공대가 있던 공릉동에 지어졌다.

서울대 김성준 연구원(과학사 및 과학철학협동과정)2005528일 서울대에서 열린 한국과학사학술대회에서 ‘1950년대말 두 미국인 과학자의 한국 원자력 보고서를 발표했다.

김연구원은 이 논문에서 이대통령이 원자폭탄을 염두에 두고 연구용 원자로를 인적이 드문 외진 곳에 지으려 했다고 밝혔다. 김연구원은 그 증거로 물리학자로서 초대 문교부 원자력과장을 지냈던 윤세원 박사의 개인 비망록 등을 들고 있다. 기록에 따르면 윤박사는 원자력과장에 부임한 직후 이승만 대통령을 만났다. 이대통령은 윤박사에게 우리나라도 원자탄을 만들 수 있느냐고 물었으며 연구소를 지을 장소는 진해도 좋아. 더 좋은 곳이 필요하다면 찾아보게라고 말했다는 것.

이에 윤박사는 안양 박달리를 원자력연구소 후보지로 점찍었다. 박달리는 일본군 탄약고가 있던 22만평 부지로, 정락은(鄭樂殷) 국방과학연구소장의 안내로 최규남(崔奎南) 문교부장관, 박철재 기술교육국장이 현지를 답사해 크게 만족했다는 것이다. 윤세원 부장은 박익수 전 위원장의 비망록에 이러한 증언을 남겼다.

“19584월 미국 극동과학담당관(미국 주재)인 페닝턴(W. H. Penning-ton)이 서울에 왔는데, 부지를 선정해 놓았다고 하니까 가 보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와 동행한 미시간대학의 G. H. 위플 교수와 함께 박달리를 구경시켜 주었는데, 이곳을 본 이들의 첫마디가 왜 이런 오지에다 정하느냐. 대학 근처에 사람들이 왕래하기 편한 곳에 정하는 것이 좋을 텐데하면서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우리들이 대한민국은 발전속도가 빨라 머지않아 서울에서 30~40분 거리가 될 것이다. 일본의 도카이무라(東海村)도 처음에는 시골이었으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고 설명하자, 그제서야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박익수 전 위원장의 말이다.

그러나 휘플은 한국 방문 보고서에서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서울대 근처에 원자력연구소를 세워야 한다고 권고했다. 19588월 한국을 방문한 곰버그 교수(미시간대 피닉스프로젝트 책임자)서울밖에 원자로를 짓는 것은 연구소가 더 발전된 다음에 하는 것이 좋다는 의견을 냈다.

윤박사는 같은 해 8월쯤 미국을 다녀와보니 부지 선정을 했던 그곳에 철조망을 쳐놓고 누구도 들어가지 못하게 미군 팻말이 붙어 있었다고 전했다. 한국 정부는 군사적 관심으로 끊임없이 원자로를 외진 곳에 지으려 했고 미국 정부는 그것을 막으려 했다는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실무자들이 현지를 다시 답사했습니다. 어느 사이 미8군 팻말이 붙어 있었고, 그 누구도 들어가지 못하게 철조망이 둘러쳐져 있었어요. 5부장관회의에 이 사실을 보고했더니 당시 김일환(金一煥) 국방부차관이 8군에서 사용하겠다는 청원이 있어 어쩔 수 없이 동의했다고 전했습니다.”

결국 미국 측의 강력한 반대로 원자력연구소 부지는 서울대 공과대학이 있던 공릉동의 육군공병대 불도저연습장으로 낙점됐다. 국방부가 나서 여러 후보지를 놓고 안보평가를 한 끝에 그곳에 짓기로 한 것이다. 국방부가 부지를 선정한 것은 한국 정부가 원자력연구소를 안보시설로 보았다는 뜻이다.(경향신문 기사 2005.05.03)

 

 

https://ngoanyang.or.kr/6898

 

[옛신문]최초의 원자력연구소 안양 박달리에 건설하려 했다.

2022.03.07/ #옛신문읽기 #아카이브 #기록 #역사 #응답하라1958 #안양 #원자력연구소/ 우리나라 최초의 원자력연구소 안양 박달리(군용지)에 건설하려 했다. 옛 신문과 초대 문교부 원자력과장을 지냈

ngoanyang.or.kr

https://www.archives.go.kr/next/newsearch/listSubjectDescription.do?id=000105&sitePage=

 

국가기록원>기록물열람>통합검색>국정분야주제별검색>분야별주제검색

과학기술 원자력연구소 설립 (1959) 주제유형 하위주제 집필 내용은 국가기록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주제설명 근거 「원자력법」 (제2장13조, 1958) 배경 1956년 2월 3일에 한국과 미국이

www.archives.go.kr

 

관련 글 한국원자력신문(승인 2010.01.18 14:44)에서

우리나라 원자력 역사에 첫 씨앗 심은 산 증인대한민국 원자력 뿌리를 찾아서-(1)

문교부 초대 원자력과 과장 윤세원 박사

http://www.knp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90

 

우리나라 원자력 역사에 첫 씨앗 심은 산 증인

본지는 우리나라 원자력 역사의 50년을 기념하기 위해 이번 호부터 ‘대한민국 원자력 뿌리를 찾아서’라는 시리즈를 게재한다. 반세기의 원자력 역사를 맞이한 우리나라는 세계 6위의 원자력

www.knpnews.com

 

원자력 연구를 주도한 학자들 https://www.kps.or.kr/content/50years/html/kps33.htm

 

한국물리학회 전체사

    1955년 11월 10일 한국물리학회는 서울대학교 강당에서 제3회 정기총회를 개최했다. 이 총회에서 부회장 1명을 2명으로 증원하여 권녕대가 새로이 부회장이 되었다. 이 총회와 연결되어 열렸

www.kps.or.kr

 

[월간조선]2016

비망록을 통해 본 대한민국 원자력 창업 스토리11950년대 태동기

李承晩 대통령, 초대 원자력과장 불러 원자폭탄 만들 수 있나?”

: 오동룡 월간조선 기자

https://monthly.chosun.com/client/news/viw.asp?ctcd=&nNewsNumb=201602100019

 

비망록을 통해 본 대한민국 원자력 창업 스토리〈1〉 1950년대 태동기

李承晩 대통령, 초대 원자력과장 불러 “원자폭탄 만들 수 있나?”

monthly.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