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보따리/자료 381

[자료]마애종/안양 석수동 磨崖鍾마애종 考

[자료]마애종/안양 석수동 磨崖鍾마애종 考 [2008/11/14 안양민예총]곽 동 해 동국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교수 안양 석수동 磨崖鍾마애종 考 곽 동 해 동국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교수 서론 경기도 안양시 석수동 안양유원지 입구에서 약 5백 미터 정도 올라가면 좌측 계곡의 岩面암면에 한국 유일의 磨崖鍾마애종이 있다. 바위 면에 불상을 새기는 이른바 마애불의 조성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인도와 중국 등지에도 풍부한 사례가 전해진다. 하지만 마애종은 지구촌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유일무이의 문화유적인 것이다. 마애종은 구경 830㎜, 1220㎜의 크기로서 폭 2200㎜ 높이 2410㎜ 크기의 磨崖鍾架마애종가에 걸려있는 형태로 부조되었다. 그 오른편에는 가사를 입은 스님이 撞木당목으로 鍾종을 치는 모습으로..

[자료]마애종/안양 마애종의 종합적 고찰

[자료]마애종/안양 마애종의 종합적 고찰 [2008/11/14 안양민예총]최 응 천 동국대학교 미술사학과 교수 안양 마애종의 종합적 고찰 -범종 양식을 통해 본 마애종의 제작시기를 중심으로- 최 응 천 동국대학교 미술사학과 교수 1. 머리말 우리나라의 다양한 불교미술품 가운데 마애불은 일찍이 百濟백제의 泰安태안과 瑞山 磨崖三尊佛서산마애삼존불로부터 통일신라는 물론이고 고려,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오랜 기간 동안 꾸준히 제작되어 온 가장 한국적 특색을 지닌 불교조각 분야의 하나이다. 우리나라 마애불의 시원은 중국의 石窟寺院석굴사원을 모본으로 하였지만 석굴을 굴착할 수 없었던 우리의 자연환경을 맞게 자연의 암반을 다듬어 고부조로 조각한 뒤 前室전실을 만드는 한국식 석굴에서 출발하였다. 花崗巖화강암은 그 재질이..

[자료]마애종/安養의 鐘종

[자료]마애종/安養의 鐘종 [2008/11/14 안양민예총]박상국 한국문화유산연구원장 安養의 鐘종 박 상 국 한국문화유산연구원장 ‘두우웅~두우웅~’ 종소리는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고 가슴을 울려주는 존재이다. 특히 신라시대 제작된 범종의 소리는 그 은은하고 청아한 소리와 신비로운 여운으로 오늘날에도 사람들의 옷깃을 여미게 한다. 오늘 우리는 안양시 만안구 석수동 중초사지 인근 암벽에 새겨진 마애종이 지닌 문화재적 가치를 재조명하고 이것을 지방문화재에서 국가문화재로 승격시키기 위해 이 자리에 모였다. 주조(鑄造)된 종이 아닌 바위에 새겨놓은 종으로는 이 마애종이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사례로 꼽히지만, 1980년 6월 2일 시도유형문화재 제92호로 지정된 이래 별다른 조명을 받지 못하고 오늘에 이르렀다. 종은 ..

[자료]마애종/전통과 현재가 공존하는 도시를 꿈꾸며

[자료]마애종/전통과 현재가 공존하는 도시를 꿈꾸며 [2008/11/14 안양민예총]이종걸 국회의원(안먕만안) 전통과 현재가 공존하는 도시를 꿈꾸며 이 종 걸 국회의원(안양만안) 천년세월 동안 소리 없던 마애종의 울림을 새롭게 듣는 의미 있는 날입니다. 우리의 가슴에서 잊혀져 가는 역사의 숨결을 느끼고, 국내 유일의 문화재 ‘안양마애종’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노력해 오신 (사)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안양지부 임종순 지부장님과 「安養世界 마애종 문화포럼」 박명주 위원장님께 경의를 표합니다. 안양의 역사는 ‘안양(安養)’의 지명유래를 통하여 천년의 역사를 가진 古都입니다. 그러나 천년에 버금가는 안양을 대표할 수 있는 역사적 가치를 가진 상징이 없이 문명의 발전과 산업화 추세에 따라 정형화된 현대화 도시로 성장..

[자료]마애종/문화유산에 대한 올곧은 이해의 자리가 되기를

[자료]마애종/문화유산에 대한 올곧은 이해의 자리가 되기를 [2008/11/14 안양민예총]이필운 안양시장 문화유산에 대한 올곧은 이해의 자리가 되기를 이 필 운 안양시장 금년에 벌써 3회째를 맞게 된 「安養世界 마애종 문화포럼」을 개최하게 된 것을 매우 뜻 깊게 생각합니다. 또한 우리 안양의 문화유산 보존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이 자리를 마련 해 주신 (사)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안양지부 임종순 지부장님과 회원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문화재는 우리 선조들의 삶의 예지와 숨결이 깃들여 있는 소중한 보배이며, 자산입니다. 이러한 문화유산을 잘 보존하여 후손에게 전승하는 것이야말로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안양의 문화재를 대표하는 ‘마애종’은 암벽에 승려가 종을 치는 모습을 조각한 것으로 현..

[자료]마애종/민족의 가슴에 아름다운 울림으로!

[자료]마애종/민족의 가슴에 아름다운 울림으로! [2008/11/14 안양민예총]김용태 (사)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회장 민족의 가슴에 아름다운 울림으로! 김 용 태 (사)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회장 청명한 하늘만큼 가을의 풍성한 기운이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상황에서 오늘 [안양세계 마애종 포럼]이 참으로 진취적이고 뜻 깊은 자리로 여겨집니다. 우리 민예총은 자유와 평화를 꿈꾸며 군사독재에 저항하고 민주화에 앞장서며 시대의 고통을 함께 한 예술인 단체입니다. 우리 민족의 역사에서 얼마나 어려운 시기가 많았습니까? 하지만 선조들께서는 그때마다 새로운 희망으로 온 몸을 던져 등불이 되셨고, 그렇게 시대를 밝히셨음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옛 것을 익히고 본 받아 새로움을 창조한다”는 ..

[자료]마애종/천년의 세월을 깨고

[자료]마애종/천년의 세월을 깨고 [2008/11/14 안양민예총]임 종 순 (사)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안양지부장 천년의 세월을 깨고 임 종 순 (사)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안양지부장 천년 전, 안양 관악산 골짜기에 화려한 사찰이 있었다. 신라와 고려의 정신적 토대를 이어가기 위해 수백의 수도승들과 최영 장군을 비롯해 젊은 인재들이 수양하던 곳. 그 사찰을 벗어난 외진 곳에 하천을 내려다보며 묵묵히 큰 바위가 서 있다. 그곳에 어느 이름 없는 석공이 바위를 쪼아 종을 그리며 자신을 새긴다. 천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그 화려한 사찰과 탑들은 흔적도 없고, 바위에 스님과 종(鍾)만이 마주하고 있다. 천년의 세월을 침묵한 종(鍾)이여! 세상에 함몰된 중생들을 깨우치기 위해 안양과 한민족의 안녕을 위해 어찌할 수 ..

[자료]안양역앞에 미륵 부처 있던 제13 당마소 이야기

[자료]안양 미륵은 어디로 갔나?안양 미륵의 기록은 문헌적 기록은 거의 없고 다만 구전으로 전해 오는 설에 의지하고 있다. 안양미륵당 이란 말은 정조가 아버지능이 있는 화성(수원)을 가기 위해 기획한 園幸乙卯整理儀軌에 궁에서 수원(화성)까지 거둥의 안전을 위해 척후소로 24 곳의 塘馬를 설치하는 중에 제13 당마소가 安養彌勒堂站 이란 말이 있고 口傳에는 정조가 안양을 지날 때 번번이 말이 발길을 떼지 못 하자 그 연유가 미륵부처에게 불공을 드리지 않는 탓이라 하여 불공을 드리니 비로소 말이 움직였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이 미륵을 언제 누가 어떻게 만들었는지는 알 수 없고 다만 그 위치는 지금의 안양역 자리에 있었다는 것이다. 또 다른 구전에는 언제 형성된 이야기인지는 모르지만 원래 여기가 미나리밭 이었..

안양권에서 가장 오래된 군포장 얘기

안양권에서 가장 오래된 군포장 얘기 [2007/08/13 군포시티뉴스]리포터 - 장병연 추억에나 남아 있음직한 오일장, 지금은 개발로 인해 수도권주변의 오일장이 성남의 모란 시장을 제외하고는 거의 사라졌지만, 우리 군포에도 인근 사람들을 불러 모아 신나게 장을 벌렸던 유명한 이 있었다. 당시 군포장은 인근 충청도에까지 입소문이 흘러 장돌뱅이들과 장꾼들을 불러 모아 인산인해를 이루었다고 한다. 웬만한 장꾼들이라면 을 모르는 사람들이 없을 정도였다고 하니 그 규모가 얼마나 컸던지 미루어 짐작해 볼 수 있겠다. 어린 시절, 장날은 명절 다음으로 기다려지는 설렘이었다. 장에 가신 아버지의 손에 들려 있을 자반고등어와 총천연색이 어우러진 사탕, 그 사탕가운데 가장 인기가 있었던 것은 줄무늬가 들어간 왕눈깔사탕이었..

안양은 한국 블록버스터 영화의 효시

우리나라 영화 중 블록버스터의 효시는 어떤 작품일까. 영화진흥위가 지난 1월 발행한 연구보고서 ‘한국영화산업 구조분석’에 따르면 ‘쉬리’를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시초 작품이라 했다. 하지만 ‘쉬리’가 우리나라 블록버스터의 효시는 아니다. ‘쉬리 ’가 31억원의 제작비(마케팅비 포함)와 초특급흥행(전국관객 약 580만명)이라는 기록을 남긴데다 강제규 감독이 이 영화로 100억원이나 벌었으니 한국형 블록버스터 하면 팬들이 제일 먼저 ‘ 쉬리’를 떠올리는 것 같다. 하지만 영화연구가 정종화씨의 주장은 다르다. “1960년대는 우리나라 영화의 전성기였어요. 그 당시에 지금의 블록버스터에 해당하는 영화가 여러 편 있었는데 권영순 감독의 ‘진시황제와 만리장성’은 초대형작품이죠. 한양영화사가 3500 만원을 들여 만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