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머신/옛사진읽기

1960년대 금성방직과 안양읍내 항공사진

안양똑딱이 2017. 2. 15. 16:34

 

#기록 #기억 #옛사진 #안양 #금성방직 #안양중학교#안양여중고 #양짓말 #안양천 #수암천/ 안양 도심(안양읍) 한복판에 자리했던 금성방직(현 대농단지)을 중심으로 안양천과 수암천, 북부동(안양2동)과 남부동과 구시장 및 시대동과 중앙동(안양1동), 양지동(안양3동)과 장내동(안양4동) 등 현재의 만안구 일대가 한눈에 보이는 1960년대 중반의 항공사진입니다. 사진을 찍은 곳은 안양3동 우성아파트 상공으로 윗쪽 방향이 안양천과 비산동,안양7동 및 지금의 평촌, 왼쪽은 안양3동과 석수동, 오른쪽은 안양4동과 3동및 9동쪽, 아랫쪽은 안양3동과 박달동 방향이지요.(출처:안양시자료관)
사진 중앙 아래의 큰 건물이 금성방직입니다. 금성방직에는 당시 전국에 단 3군데 밖에 없던 잔디축구장이 이곳(사진 중간 왼쪽 공터) 에 있어 1970년대 국가축구대표팀이 이곳에 와서 연습을 하기도 했지요.
금성방직은 담장 둘레만 십리 걸음이라 할 정도로 엄천 컸었는데 일제 강점기 이곳에는 조선직물이 있다가 해방 직전인 1944년에는 화신백화점 사장인 박흥식에 의해 비행기공장이 건설돼 시제기 2호기까지 생산된 곳인데 안양시사에도 기록되지 않았을 만큼 안양의 많은 역사를 담고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금성방직 우측으로는 넓은 운동장이 보이는데 안양중학교(개교 1949년 1월 20일)와 안양공고 교정이며 그 옆으로 보이는 하얀 줄기는 수암천으로 수리산에서 새마을과 안양3동을 지나 안양역 앞을 지나고 양명 굴다리 앞에서 만안국교 앞으로 180도 돌아 박달동에서 안양천으로 연결되었는데 현재 안양철교쪽으로 직강화된 수암천 형태와는 다른 모습를 보이고 있지요.
수암천 물줄기는 1970년대 중반 경부선 철길옆으로 돌려 안양철교앞에서 안양천과 합류하도록 돌리지 않았을까 싶은데 당시로서는 대공사였음에도 이에 대한 기록을 찾기가 쉽지 않네요. 과거 수암천이 흐르던 자리에는 주택들이 빼곡히 들어서 어디가 물줄기 였던가 알아볼 수도 없답니다.
1970년대 중반까지 만안초등학교를 다녔던 학생들은 학교에 들어가려면 하천을 건너야 했는데 구멍이 뻥뻥 뚫린 쇠다리(아나방 다리)를 건너야 했지요. 여름철에 장마가 지면 이 다리가 떠내려가 1번 국도쪽으로 돌아가거나 거기도 물이 넘치면 등교가 어려웠던 시절로 안양천에는 참 물이 많았답니다. 
사진 우측 아랫쪽에 보이는 집들은 햇빛이 따사로운 동네 양짓말(현 안양3동)이며 그 아랫쪽 야산은 떡산(?)이라 불리우던 곳이지요. 당시 양짓말에는 이곳 토박이인 김대규 선생을 비롯 채만식, 박두진 등 꽤 알려진 문인들이 살았던 동네이지요. 
사진 좌측의 흰색 도로가 안양여고 사거리에서 박달동을 지나 안산으로 연결하는 도로인데 사진 중간쯤에 양갈래길이 안양여고 사거리로 당시 이 도로는 명칭(현 안양로)조차 없는 비포장길로 읍내쪽으로는 도로가 뚫렸으나 석수동쪽으로 도로 자차체가 뚫리지 않은 상태로 이 구간은 안양대교가 놓여진 이후인 1970년대 중반 이후에나 개설되지요. 
사진 중앙의 다소 검은 부분은 현재의 안양 일번가이자 안양역 그 뒷쪽으로는 철길 건너 시대동의 안양시장(구시장)등이 있는 다운타운 지역이며 사진 윗쪽의 구불구불한 것이 안양천으로 현재의 직강과는 다른 형태임을 알수 있습니다. 다운타운 지역에서 사진 왼쪽 위로 구불구불한 하얀 길이 보입니다. 이 도로는 안양역앞 1번국도 안양양조장앞 삼거리에서 사진 윗쪽으로 땡땡댕 철길을 건너 구시장과 수푸루지 다리를 건너 수푸루지마을(현 임곡마을.비산동성당앞)로 해서 안양운동장 남문, 수촌마을, 인덕원을 지나 청계로 해서 말쭉거리(현 서울 강남)로 연결하던 도로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