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사진기록/골목풍경 1902

[20250711]안양시내 골목에서 땡글땡글 익어가는 안양포도

2025.07.11/ #도시기록 #안양포도/ 안양6동 골목 단독주택 담벼락에서 안양포도가 땡글땡글 익어간다. 포도농가 대부분이 없어진 안양포도는 사실상 소멸됐으나 이렇게 흔적만 이어지고 있다. 안양 포도는 부천의 복숭아,수원의 딸기와 함께 경기 3미로 불리우며 교과서에도 실렸을만큼 이름을 날렸다. 1967년 9월 15일 경기도 안양 경향포도조합에서 국내 최초 양조포도주를 생산했다는 기록을 보더라도 안양포도는 명물이었다. 과거 1970년대에는 포도밭이 90ha에 달할 정도로 안양 곳곳에 포도밭이 있었다. 그러나 80년대 급속한 산업화, 도시화에 밀려 안양포도가 점차 자취를 감추자 안양시는 1995년 '안양포도'의 옛 명성을 되찾기 위해 품질인증과 고유의 디자인을 넣은 포도 박스 등을 지원했으나 안양시내 ..

[20250710]여름꽃 능소화가 맞이하는 안양시청&안양시의회

2025.07.08/ #도시기록 #안양 #시청 #능소화/ 벚꽃, 진달래 등 온갖 봄꽃이 다 지고 세상이 초록색으로 물들 때쯤, 능소화가 핀다. 핀다는 말보다 주렁주렁 열린다는 표현이 더 잘 어울리는 능소화는, 주황빛의 덩굴나무꽃이다. 능소화(凌霄花)는 ‘업신여길 능’, ‘하늘 소’자를 쓴다. 즉, 하늘을 업신여기는 꽃이라는 뜻이다. 꽃의 이름치고는 꽤 거친 이름인데, 대체 왜 이런 이름이 붙었을까? 그 답은 능소화의 개화 시기를 보면 알 수 있다. 능소화는 7월부터 9월에 피는 꽃으로, 만개 시기는 한여름인 8월이다. 꽃이 8월에 핀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8월은 장마와 태풍, 그리고 푹푹 찌는 더위가 도사리고 있는 달이다. 그러니까, 자라나는 식물에게는 저주와도 같은 시기다. 능소화는 그런 때에 핀..

[20250708]안양 비산2동 1979년 준공된 노포급 미륭아파트

2025.07.06/ #도시기록 #안양 #미롱아파트 #비산2동 #since1979/ 안양 비산2동에 자리한 미룡아파트. 똑딱이가 학의천을 걸어가면서 윙크하다. 미륭아파트는 1979년에 준공된 아파트로 현재 안양에서 가장 오래된 아피트중 하나인 노포급 아파트단지다. 아파트 입주자들이 방 벽면에 못질을 하니 잘 박히지 않는다고 말할 만큼 콘크리트 강도가 단단해 튼튼하게 지었다고 소문났던 곳이다. 봄철에 하얀 벚꽃이 만개하면 이웃과 친지를 초대해 아파트 동네 잔치를 펼치기도 했던 곳이다. 수년전부터 추진중인 재건축을 둘러싸고 시공사 선정 논란으로 한동안 뒤숭숭했으며 결국 재건축으로 철거되어 사라질 날도 멀지 않은듯 싶다.

[20250706]나무 그늘이 좋은 안양 학의천 북쪽 제방 숲길

2025.07.06./ #도시기록 #안양 #학의천 #제방위 #나무숲길/ 무더운 여름 뜨거운 햇살을 피해 걸을 수 있는 학의천 북단 뚝방길. 그늘이 있는 멋진 산책길이다. 코스는 안양 비산동 비산교부터 시작해 학운교-내비산교-수촌교-대한교-동안교-관양교-인덕원인도교까지 나무숲 터널이 이어진다. 봄에는 향긋한 꽃내음속에 노란개나리꽃을 감상하며. 여름에는 짙푸른 녹음을, 가을에는 노란은행잎 카페트를 밟으며, 겨울에는 소복소복 소리나는 하얀 눈을 밟으며 거닐수 있는 멋진길이다.오늘은 뜨거운 햇살을 피해 은행나무숲 그늘길이 멋진 구간인 쌍개울부터 학운교까지 짧은 구간을 지나다.

[20250705]장기.바둑 고수들 모이는곳 안양대교 다리밑

2025.07.04/ #도시기록 #안양 #어른들놀이터 #안양대교/ 안양천 인양대교 다리밑, 다리 아래로 부는 골바람이 시원한곳, 장기와 바둑 고수들이 모이는곳, 각종 의자 집합소. 와이파이 팡팡 터지는곳 비봉산자락 망해암과 절 아래 절벽 산꼭대기 비행기등대(안양무선표지소)가 보이는곳, 경부선 기차와 1호선 전철이 지나는 소리가 들리는곳.

[20250705]정조대왕 명으로 1795년에 축조한 안양 만안교

2025.07.04/ #도시기록 #안양 #만안교 #정조대왕/ 1795년(정조19)년에 축조된 만안교는 당초 안양천에 세워졌다. 1905년에 경부선 철도를 부설하는 과정에서 안양천 물길이 바뀌면서 만안교 다리 아래는 물이 없는 건천이 되고 다리위엔 1번국도 차량 통행 편의를 위해 아스팔트로 덮히고 콘크리트 난간 마져 설치된다. 또 만안교 아래 물이 흐르지 않자 1960-70년대 재건대(넝마주이)가 한동안 살았다. 그후 1980년 1번 도로 확장을 하면서 만안교를 철거해 석수동679번지 삼막천위로 이전 복원한다. 만안교를 그대로 두고 도로를 우회 했더라면 만안교는 지금쯤 보물 또는 국보로 지정받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