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보따리/기억 87

[김정기]희미한 기억의 편린(片鱗)들~학교풍경 1(2013.10.28)

희미한 기억의 편린(片鱗)들~학교풍경 1 안양초 25회 졸업생 김정기 신문 기사에서 읽었던가? 비틀스 출신 폴 매카트니(71)가 비틑스와의 향수 짙은 과거를 다룬 신곡 "뉴"를 내면서. "옛날 회상은 내게 큰 기쁨"이라고 했다던가? 이말은 어쩌면 나에게도 해당되는지 모르겠다. "희미한 기억의 편린(片鱗)들"을 쓸때면 마치 내가 철없이 즐겁게 뛰어 놀던 때로 돌아간 듯한 착각을 하게 돼지. 그러나 나이먹어 갈수록 희미해지는 나의 기억은 잡을수록 멀어져 가기만 하는거 같다. 어찌보면 내가 이글을 쓰는 이유는 멀리 스러져가는 기억의 조각들을 잡으려는 나의 마지막 발버둥인지 모르겠다. 그래서 다른 자료 없이 희미한 내 기억을 더듬어 어렸을 때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 1학년에서 6 학년 까지의 학교 풍경을 도면으로..

[최승원]안양 석수3동 충훈부 이야기(2020.06.06)

삼막천 삼성천이 안양천을 만나 U자(역수천)로 흘러 좋은 양분의 흙이 충훈부에 쌓이는(퇴적) 지형이기에 농사가 잘되어 부농이 되는 지역이다. 이 좋은 땅이 국유지가 된 것이 당연하다. 북측에 아름다운 꽃뫼가 있고 산세가 등대같이 곶을 형성하고 있다. 현대는 안양천 뚝방 위 벚꽃축제로 지명의 이미지를 이어나가고 있다.민중에센스 국어사전 (이희승 감수)에 곳꽃. 곶꽃. 곶(串)[곧] 명 바다 쪽으로 좁고 길게 뻗어 있는 육지의 끝부분이라고 되어있다.고대 미추홀은 주변이나 안양지역 낮은 곳은 바다 이었다고 본다. 청일전쟁시에도 배가 군포까지 들어왔다고 전해지고 있다. 근현대도 중국은 큰개울(한천 한내) 로 배가 다닌다. 바닥이 걸리면 로프로 양편에서 끈다. 유럽에서는 말이 끈다고 배 박물관에 전시된 것을 보았..

[최승원]안양1동 구시장 (시대동)이야기(2020.05.18)

안양1동 구시장 (시대동)이야기 1905년 안양역이 생기기고 1917년 서이면사무소가 이사온, 시대동은 1925년 을축 대홍수시 많은 인명이 사망하고 집이 침수붕괴 되자 군포시장을 안양리로 옮기고 안양천지류에 대대적인 제방공사를 하였다. 이로 인해 구시장과 도로가 안양면의 중심이 된다. 1945년 해방후 도시기획에 따라 ‘47년 영등포에서 군청이 내려오고 ’47.10.25년 안양경찰서가 준공 49년 읍사무소가 생기면서 신읍거리가 구성되었다, 시흥군청 뒤에는 공설운동장이 있었다. 일본강점기에 건축되고 운영되던 방직공장은 한국인이 인수하여 전후 태평방직으로 운영한다. 나는 49년초 모친이 시장남측 태평방직에 경비로 취직하게 되어, 서울서 세발자전거를 가지고이사하여 구시장 도로 북측상가 가계 뒷방에 거주하였다..

[최승원]삼성산자락 삼성국민학교 재학 시절(2020.05.11)

1957년 9월초 집에서 북서로 1,2km 20분 거리 삼성초등학교 5학년2학기 편입하였다. 교사는 목조木造단층으로 가운데 현관을 두고 좌우 각 3개 교실을 배치하였다. 저학년은 오전오후로 나누어 사용하였다. 5학년은남36명 여29명 합 65 명이었다. 하순용등 하 씨들이 학교뒷동네 집성촌이라 똘똘한 학생들이 다녔다. 수영특기학교 이고, 광명초교에서 열리는 시흥군 체육대회준비로 축구 등 종일 운동만하고 있었다, 단체로 트럭을 타고 가서 나는 축구선수로 라이트하프를 맡아서 뛰었다. 가을소풍에는 삼성산과 관악산사이 고개를 도보로 넘어 낙성대 강감찬 장군 유적지에 다녀왔다. 산에는 아주 큰 노송老松들이 많았다. 학교 가는 길목에 미군부대(83병기대대)가 있었는데 철조망 밖으로 천연색 서부영화를 잠시 볼 수 있..

이야기보따리/기억 2020.05.12 (1)

[김종우]안양시내 경양식집 이야기(2020.05.06)

안양 시내의 수많았던 음악 다방...음악 다방과 함께 젊은이들이 그토록 가고 싶었던 곳 이 또 있었습니다. 바로 경양식 집 이라고 불리웠던 RESTAURANT 입니다. 오늘은 RESTAURANT 이야기 입니다.아... RESTAURANT 이라는 표현 보다는 경양식 집 이라는 표현이 더 적절 할 듯 합니다.왜냐하면...30년 전 에는 경양식 집 이라는 표현을 더 많이 썼기 때문 입니다. 30년전의 이야기 입니다.아직도 먹거리가 귀하던 어려웠던 시절의 이야기 입니다. 삼시 세끼 밥만 먹어도 다행 이었던 시절의 이야기 입니다.輕 洋 食 ... 경양식 이라는 표현은 일본식 표현 방법 입니다.말 그대로 가볍게 먹을수 있는 서양식 음식을 말합니다.그러나 표현 처럼 경양식은 이래 저래 가볍게 먹을수 만 은 없는 고급..

이야기보따리/기억 2020.05.06 (1)

[김종우]안양 음악다방 이야기(2020.05.06)

나는 지금도 그 예전 30여년 전의 다방 이야기만 나오면 가슴이 설레고 그 시절의 아련한 기억과 추억이 떠올라서 잠시나마 옛 생각에 잠기고 그 시절 음악을 듣기도 합니다. 1978년 년말 부터 1979년 년초의 한 겨울... 19,20살 시절 철없이 마냥 신나고 즐거웠던 기억의 중심 에는 그 이름도 정겨운 다방이 있었습니다. 다방과 관련된 이야기를 빼놓고선 그 시절을 기억 하거나 추억 할수 없을 정도로 다방에 관련된 이야기 라면 나에게는 아직도 무궁무진한 수다거리가 있습니다. 내가 알고 기억 하는 안양의 다방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안양에서 음악 다방 이라고 지칭 되던 다방의 시작은 중앙 시장 입구의 중앙 다방과 신신 다방 그리고 약속 다방이 처음이 아니었나 생각 되는데 우리 모두가 기억 하는 다방 이..

이야기보따리/기억 2020.05.06 (2)

[이용구]안양 병목안 채석장의 기억(2010.05.20)

병목안시민공원 탐방기 지난 5월15일은 스승의 날이자 우리 안양 토박이들의 모임(서이회)이 있어 점심을 하고 처음으로 안양시 만안구 안양 9동에 있는 병목안 시민공원을 가 보기로 했다 이곳은 벌써 4년전인 2006년 5월 24일에 완공을 보았고 이에대한 찬사(讚詞)가 자자해 한번 꼭 가 보려 했으나 나는 가까이 살고 있다 하여 차일피일 하다가 이제껏 가 보지 않았다가 오늘 시간도 있고 날씨도 좋은 기회라 하여 나섰다 말에 의하면 여기에 10만1.238m2 부지에 약 260억이란 막대한 비용을 투입하여 안양 시민공원으로 조성한 것이다 시내 창박골행 버스로 삼거리 수퍼앞에 내리니 바로 올려다 보였다 공원입구 광장 안에는 자연석에 가로 새긴 "병목안시민공원"이라 쓴 돌 비석이 있었다 여기에는 주차장이 있고 각..

[기억-조동범]안양 태창목재소 이야기

태창목재소 / 조동범 2003 가을호 시인이 쓴 산문 며칠 전인가 퇴역 군함을 수장시키는 사진을 본 적이 있다. 거대한, 사진 속의 군함은 제 생명을 다하고 가라앉고 있는 중이었다. 뱃머리를 하늘을 향해 치켜든 군함은 평화롭고 행복해 보였다. 자신의 일생을 바다에서 보내고 바다로 돌아가는 군함의 모습은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수 없이 많은 전투와 항해를 겪었을 군함의 최후는 장엄한 느낌을 주기까지 했다. 다이버들의 훈련용으로 쓰일 것이라고는 하지만 고철로 분해되지 않고 온전히 바다에 묻힐 수 있다는 사실은 내게 즐겁고 경이로운 일이었다. 군함은 천천히 녹이 슬어가며 아주 오래도록, 바다에서 보낸 일생을 추억할 것이다. 나는 그 사진을 보고 몇 달 전에 문을 닫은 태창목재소를 떠올렸다. 경기도 안양시에 있..

[기억-정진원]한직골에서 안양까지

[정진원]한직골에서 안양까지(1) [한직골-인덕원] 도시 벌레가 농촌 풀잎을 야금야금 잠식(蠶食)하듯이 도시화(urbanization)가 이루어졌고, 우리는 너나 할 것 없이 그 거센 파도 아래 그야말로 집도 절도 없는 홈리스(homeless)가 된 느낌이다. 도시화가 진전되면서 어디 변화되지 않은 곳이 있으랴마는 지금 어딜 가나 어리벙벙해질 뿐이다. 옛날 산골 촌놈 서울 구경의 충격이 도처에 있게 되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길가에 동네가 있게 마련이다. 한직골과 안양 사이에는 ‘한직골-양지편-벌모루-성고개-진터-인덕원-(동편)-부림말-간뎃말-(샛말)-말무데미-뺌말-(안날뫼)-구리고개-(운곡)-수푸르지-안양’이 굵은 동아줄에 큰 매듭들로 맺혀있듯이 있었다. 마을마다 아이디(ID)가 붙어있어서 나름대로의 ..

[기억-정진원]남태령에서 부림말까지

[정진원]님태령에서 부림말까지 옛날 과천(果川)은 한때나마 서울(한양)의 관문이었다. 과천에 ‘관문리(官門里)’가 있는데, 그것이 옛날 과천군의 관문(官門)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괜찮은 지명이지만, 한양의 관문이란 뜻이라면 관문(關門)이 맞는 것이 아닌가 싶다. ‘서울이 낭(떠러지)이라니까 과천서부터 긴다’라는 말이 있는 것을 보면 한양 남쪽 사람들이 인덕원을 거쳐 과천으로 들어오고, 남태령을 넘어 지금의 사당동을 거쳐 동재기(동작)나루나 노량나루에서 한강을 건너 한양에 입성했을 것이다. 또는 과천 삼거리에서 지금 양재동(옛날 말죽거리)으로 나가 새말(신사동)나루나 압구정나루에서 한강을 건너기도 했었다. 인조가 이괄의 난을 피해 양재역에 이르매, 신하들이 급히 죽을 쑤어 바치니 왕이 말 위에서 죽을 먹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