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머신/옛사진읽기

1970년대 안양 다운타운 구시장(시대동) 골목

안양똑딱이 2016. 7. 4. 23:41

 

#안양 #역사 #기록 #기억 #골목 #옛사진 #시대동 #구시장 #1970년대/ 1940~1970년 초까지 안양읍내에서 가장 상권이 컸던 시대동(市垈洞)으로 구시장이라 불리우던 현 안양1동의 1970년대 중반의 골목 풍경으로 지금은 과거의 모습들은 모두 사리지고 그 자리에는 뜨란채아파트 단지가 자리하고 있다. 
이이들이 노는 골목길 앞으로는 버스가 다니는 길이 있었는데 안양역에서 출발한 버스가 땡땡땡 철길을 건너 시장을 통과해 수푸루지 다리(현 임곡교)를 건너고 비산동성당 뒷길과 안양운동장 남문앞 고개, 수촌마을 뒷골목을 지나는 옛길과 인덕원으로 해서 과천을 지나 말죽거리로 넘어가는 서울 버스가 다니던 길이었다. 
당시 구시장 철길에는 열차가 지나갈때는 땡땡땡 소리와 함께 건널목에 차단봉이 내려왔다. 철길 옆에는 건널목을 지키는 사람도 있었다. 
60년대 말 구시장 주변에는 이발소, 중국집, 양복점 등이 즐비했었고, 철길 지나 성신약국 오른쪽으로 들어가면 커다란 쌀 창고와 정미소가 있었는데, 창고 앞은 넓은 마당으로 당시 동네 어린이들의 놀이터였다. 
철길 왼쪽 골목길을 따라 가면 허스름한 주택들이 이어지고 한국제지 공장 담벼락을 따라 안양천쪽으로 가면 정문이 있었다. 땡땡땡 건널목에는 1970년대 중반에 육교가 놓여지고 1983년 태평방직 자리에 진흥아파트, 2002년 1월 한국제지 자리에 삼성래미안이 들어서고 사진 좌측의 구시장 또한 주거환경개선사업에 따라 2004년 주공아파트가 들어서면서 과거 모습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찾아볼 수가 없다.

안양 시대동/ 구시장/ 안양1동

안양시장(이하 구시장)은 1926년 1월 28일 5일장으로 개장되었던 안양 최초의 공설시장으로 1929년 안양지역에서 최초로 전기가 송전된 곳으로 과천을 거쳐 서울로 가던 시외버스정류장과 국밥집에 중국집, 대장간에 우시장, 쌀창고 등이 있던 안양장터이자 옛 다운타운이었다.
이는 1905년 경부선 철도가 개통되면서 안양역사가 개설되자 이 지역이 행정과 경제의 소통의 공간으로 급격한 물동량의 증가와 인구유입을 가져온 결과로 1960년대 중반까지 시흥군 최대의 시장이었다.
[참고]인구 1900년대 초 약 3,000명/ 1912년 3,462명/ 1936년 9,234명/ 1940년 1만명/ 1949년 2만명
구시장은 기차와 자동차로 동시에 접근할 수 있는 교통상의 이점도 있었지만 마침 안양시장보다 앞서 있었던 군포장이 1925년에 있었던 대홍수로 물에 떠내려가자 자연히 안양리의 안양시장이 군포장의 상권을 흡수하며 당시 안양리 지역의 비약적 경제성장과 더불어 빠른 속도로 발전하며 시흥군 지역의 대표적인 시장으로 성장하는 계기가 된다.
이에 구시장은 군포, 의왕, 과천, 광명, 수암, 군자등에서 이곳으로 장을 보러 올 정도로 농산물, 축산물, 포목, 일용잡화까지 거래되는 품목이 아주 다양했다. 또 매년 정기적인 씨름대회가 열려 1등에 황소1頭, 2등에 광목 1疋이 상품으로 수여되기도 했으며, 서커스 공연 등이 열리는 문화의 중심지였으며, 선거유세나 각종행사 등 지역정치의 발원지였다.
안양시지를 보면 구시장은 개시(開市)한 1년후(1927)의 년간 매출액이 농산물 15만 6천원, 잡화 21만 2천원, 그밖에 직물, 축산물, 수산물 등 모두 50여 만원에 달했다. 상인들은 개시 1주년을 기념하기 위하여 1927년 6월 4일 단오절을 기해 대대적으로 기념식을 거행키도 했는데, <동아일보> 1927년 6월 1일자에 안양시장일주기념(安養市場 一週紀念) 이란 제하에 다음과 같이 보도하였다.
"경기도 시흥군 서이면 안양은 군의 중앙일뿐 아니라, 교통이 편리하고 따라서 산물도 상당함으로 동면에서는 작년중에 안양시장을 설치한 후 유래 성적이 비상히 양호하던 바 더우기 안양번영의 일책으로 오는 6월 4일(단오일)을 기하여 전시장(全市場) 일주년 기념식을 성대히 거행하리라 하며 여흥으로 예기의 가무와 오산청년(烏山靑年)의 소인극(素人劇) 외 안양소년척후대 주최의 축구대회 및 동화동요회 등이 있어서 많은 흥미가 있으리라더라"
1주년 기념식은 예정대로 동년 6월 4일 오후 2시부터 안양시장 내 광장에서 수천의 관객이 참석한 가운데 전대(田代) 발기인 대표의 식사와 조한구 서이면장의 경과보고, 신미(神尾) 시흥군수의 고사, 종문웅(안양금융조합 이사), 조희철(동아일보 시흥지국 기자), 엄기승(안양공보교 기성회장)의 축사에 이어 기녀들의 기무, 소인극등을 공연해 일대 성황을 이루었다. 안양시장측에서는 이후로도 씨름대회.그네대회 등을 개최하여 시장의 번영을 도모하였는데, 일례로 1933년 8월 25일, 8월30일, 9월 4일 등 장날을 기해 안양역 광장에서 안양씨름대회를 개최했고, 같은해 음력 7월 30일 장날부터 추석날까지 매 장날마다 씨름대회를 개최해 1등에 황소1두, 2등에 광목 1필이 상품으로 수여했다.
구시장은 1961년 5. 16 직후인 11월 6일 안양4동에 중앙시장(새시장이라 부름)이 개장하면서 상권을 빼앗기자 한때 우시장으로 변신하며 상권의 부활을 모색했으나 침체의 길로 접어든다. 여기에는 하천변에 위치한 저지대였던 관계로 홍수때마다 침수피해를 입고, 주위를 에워싼 한국제지와 태평방직 같은 큰 공장들과 철로 등으로 인한 통행의 단절과 고립화도 한몫을 한다.
구시장은 안양역이 가깝고 옛 태평방직 자리에 대단위 아파트(진흥아파트)가 들어서며 유동인구가 늘어나자 한때 시장으로서의 기능 회복을 모색하지만 뒷골목 상점과 노점들이 택지로 바뀌는 등 주거환경이 열악한 지구로 전락하면서 주거환경개선사업지구로 지정돼 아파트단지가 들어서면서 옛 흔적들은 모두 사라지고 현재의 자리에는 1970년 중반에 세워진 육교만이 남아 있다. — 장소: 안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