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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조성원]60년대 국민학교 졸업 선물 '도장'

안양똑딱이 2017. 3. 15. 15:51

[조성원]60년대 국민학교 졸업 선물 '도장'
(졸업과 도장)

우리 학교(안양초등학교)는 큰 강당이 있었다. 학예발표회라든지 영화상영 같은 많은 행사를 그곳에서 하였다. 나는 중앙에 두 번 서봤다. 한 번은 합주 반 일원으로 하모니카를 불기위해 올라갔으며 또 한 번은 졸업식 때 작은 상을 받기 위해 단상에 올랐었다.
 
"빛나는 졸업장을 타신 언니께 꽃다발을 한-아름 선사합니다.
물려받은 책으로 공부를 하며 우리-는 언니 뒤를 따르렵니다."
 
이 노래를 부르면 눈물부터 주르륵 흘러내렸던 순순한 시절이 있었다 . 송사와 답사는 또 어떠하였던가. 강당 한구석에서 귀뚜라미 같이 엷게 훌쩍이던 소리는 어느 틈 개구리 울림통 마냥 일시에 터져 울음바다가 되었다. 요즘 아이들은 눈물은커녕 졸업노래를 아예 행사에서 제외시키는 경우도 있다는데 그 노래는 지금 묘하게시리 동남아에 수출이 되어 그곳 아이들이 눈물을 펑펑 흘린다고 한다.
 
물 대청소를 끝내고 초를 발라 빤짝빤짝해진 강당마루에 걸상을 나르고 예행연습을 하던 날 남녀 경계로 나뉜 복도 한복판으로 호명을 하면 넷! 소리와 함께 걸어 나갔던 어느 수줍음 많았던 한 학생의 양말이 하필이면 그날따라 빵꾸가 나 있었다. 이를 본 여학생들의 웃음소리에 더욱 더 기가 죽어 그 아이는 실수를 연발하여 연습을 따로 해야했다. 그 시절 어디서든 똑같았던 식순이 대충 기억난다.
 
지금부터 ○○○○학년도 제 ○회 졸업식을 거행하겠습니다.
국민의례가 있겠습니다.
먼저 국기에 대한 경례입니다.
졸업생 재학생 모두 일어서
내빈과 학부모님들께서도 정면에 있는 국기를 향해 바르게 서 주시기 바랍니다.
국기에 대하여 경례!
바로, 다음은 애국가 제창입니다.
애국가는 1절까지 부르겠습니다.
이어서 순국선열과 호국영령 및 순직교육동지에 대한 묵념이 있겠습니다.
일동 묵념
바로, 내빈과 학부모님께서는 자리에 앉아 주시기 바랍니다.
이어서 학생대표 ○○○가 국민교육헌장 낭독을 하겠습니다.
졸업생 재학생 모두 제자리에 앉아
다음은 본교 ○○○교감선생님으로부터 금학년도 교육실적을 중심으로한 학사보고가 있겠습니다. 경청해 주시기 바랍니다.
다음은 제 ○회 졸업생 ○○○명의 졸업장을 졸업생 대표에게 교장선생님께서 수여하시겠습니다.
졸업생 일어서, ...
 
졸업선물로 나는 사전과 도장을 받았다. 나는 당시 받아든 사전에 일일이 나의 것임을 나타내는 도장을 꼭꼭 새겼다. 하지만 그때 만해도 도장이 단지 나의 것임을 나타내는 것이란 생각 말고 더 이상의 진가를 알지는 못하였다. 아니 도장은 거의 쓸모가 없었다. 왜 도장을 주었을까. 차라리 만년필이나 앨범을 주면 좋았을 것을.
 
하지만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생에 있어서 도장처럼 중요한 존재도 없다. 도장과 더불어 산 인생이다. 도장은 책임과 자기 몫을 말한다. 사회의 신분으로서의 제 몫을 철저히 다하는 도장처럼 무겁고 무서운 존재도 없다. 작디작고 딱딱한 것이 피 한 방울 안 나게 야무지게 생겼다 하였는데 생긴 그대로 그 누구도 감히 어쩌지 못 할 도장이다.
 
피눈물도 없고 주먹보다 강하고 사랑보다 강하고 인정사정 보지 않는다. 그로인해 삶이 풍비박산이 나는 것을 많이 봐왔다. 프랑스 대혁명은 삼부회의 참정권으로부터 발단이 된 것인데 알고 보면 바로 찬동하는 사람 수의 권리에 대한 문제였다. 그때부터 세상은 사람의 위치가 아닌 도장의 수가 중요하였다.
 
이세상의 도장은 그 쓰임이 제각기이고 다양하다. 막도장이라 하여 일일 작업일지에 꾹 누르는 도장이 있는가 하면 회사운영의 얼굴로써 이곳저곳에 쓰는 사용인감이란 도장도 있고 책임을 엄중히 갖는 중하다하는 인감도장도 있다. 막도장은 헤프게 찍어서인지 어디서 어떨 때 찍었는지 기억도 없고 지금도 여전히 서랍 속에서 이리저리 굴러다니며 몸을 마구 다룬다.
 
헌데 인감도장은 전혀 그러하지가 않다. 그런 신주단지가 없다. 제일 비싼 것으로 장만하여 가죽지갑에 담겨 그 쓰임의 때를 노리며 운기조식하며 신중히 지내는 인감도장이다. 그 외에도 잘 보이기 위해 찍는 얼굴도장이란 것도 있으며 이혼이나 연대보증 서명 같이 함부로 찍어서는 아니될 도장도 존재한다.
 
도장은 선명한 경계를 긋고 한 획을 마무리한다. 종지부란 표현이 이에 합당하다. 중차대함이든 단순히 하루 일과를 나타내는 표식이든 도장은 바로 나의 선명한 얼굴이다. 졸업 또한 6년을 버틴 한 획을 긋는 마감이며 또한 차분한 마음으로 맞이할 어느 다른 시작이다. 마감과 시작은 매듭이 있으며 그 매듭은 다한 결과에 대한 책임을 말한다. 마음속에 새겨 둘 것이 도장 같은 삶의 책임이다.
 
졸업은 바로 인생 어느 마침 도장 하나 쿡 눌러 찍은 것과 같다. 앨범은 차라리 갈 곳 없는 이쯤 나이에 받아드는 편이 더 합당하다. 중학교진학도 버겁다하던 때 사전은 진학을 하는 아이들의 배움을 위한 양식이었으며 도장은 진학을 못하고 사회로 진출하는 아이들의 책임을 의미하는 그야말로 값진 선물이었다.
 
  조성원의 수필 '나 어릴적' 초고에서 발췌. 이 글을 쓴 조성원(어릴적 이름 조형곤) 수필가는 1957년 안양에서 태어난 안양초교 38회, 안양중학교 23회 졸업생으로, 저하고 동창으로 오랜 기간 대덕 모 연구소에 근무하고 있지요. 블랙죠라는 이름을 글을 쓰다가 수필가로 등단해 현재는 한국수필가협회와 수필문학가협회에서 이사직으로 적극적인 문단 활동을 해오며 제2회 문학저널 창작문학상과 수필문학사가 주관한 제1회 소운문학상을 수상도 했는데 첫 번째와 두 번째 수필집인 ‘빈 가슴에 머무는 바람 1&2’이외에도 ‘송사리 떼의 다른 느낌’, ‘작게 사는 행복이지만’, '‘오후 다섯 시 반’ 등 7권의 수필집을 내놓었으며 ‘2천 년 로마 이야기’와 ‘스페인 이야기’ 등 여행 에세이집도 발표했습니다. -편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