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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사62]안양 석수1동 한마음선원 뒷동네(2014.11.08)

안양똑딱이 2018. 8. 13. 18:23

 

[탐사62]석수1동 한마음선원 뒷동네


2014.11.08/ #안양 #도시 #동네 #골목 #안양기억찾기탐사대 #석수1동 #한마음선원 #구룡마을/ 제62차 탐사에는 5명의 멤버들이 동참했네요. 김혜련샘은 탐사일이 토요일로 원상회복된 줄 몰라서 불참하고 권보형샘은 효현마을 집집에 달 문패 만들기 작업에 참여하느라 빠졌구만요.
이날 찾아간 곳은 안양에서 서울행 버스에 몸을 싣고 경수도로를 가다보면 관악역을 지나 제2경인고속도로 못미쳐 우측의 나즈막한 언덕위에 우뚝 자리한 기와지붕의 불교 건축물인 한마음선원 주변으로 이곳은 과거 구룡마을이라 불리우던 동네입니다.
한마음선원과 관악역이안아파트 사이로 난 다소 가파른 찻길을 올라 골목길로 접어들면 여기에 이런 동네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또다시 작은 골목길이 있고, 앙증맞은 계단도 있고 그 사이로 오르락 내리락 하다보면 마당도 있고, 장독대도 있고, 텃밭도 있고, 여유로움도 있어 보이는 듯한 아담한 집들이 있습니다.
언덕위 동네 공동주차장에서 내려다 보니 단독주택에 연립주택, 3층짜리 오래된 아파트도 있지만 유독 기와지붕을 얹은 집들이 옹기종기 언덕 아래 모여 있네요.
동네뒤 우회도로 주변은 그린벨트입니다. 음식점들이 즐비한 삼막도로 방향으로 걷다보면 새소리가 요란합니다. 내리막을 조금 걷다보면 좌측 야산으로 관악산으로 오르는 등산로가 있는데 초입부터 낙엽이 떨어진 에스자 소로길이 멋진 풍광을 선물하고 그 아래 큼지막한 텃밭에서는 구수한 군불 내음과 함께 가을걷이가 한창인 모습이 어디 멀리 시골에 간 듯 정겨움이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조용하면서도 아담한 동네, 이곳 역시 재개발의 움직임이 한창이지만 그래도 옛모습을 간직하고 있어 보기가 좋네요. 동네 골목길 곳곳에 빈집들이 적지 않은데 한마음선원에서 이미 매입을 해놓은 듯 싶어 재개발가지 가기엔 쉽지 않아 보이기도 합니다.

탐사코스: 경수대로-한마음선원버스정류장-경수대로1280번길-막힌골목(철망유리담장)-한마음선원-경수대로1290번길-동네골목길-동화마트-유진주택(1290-22-5)-삼거리골목돌담집-공용주차장(전망좋은곳)-계단이있는집(1290-30-19)-뜨락예쁜집(1290-32)-진주빌라-삼보연립-경수대로1290번길-삼막터널등산로입구-텃밭-삼막로-태일연립(삼막로12-1)-삼막삼거리-정자-끝

 

안양 구룡마을(九龍洞) 이야기
관악역 동쪽에 자리잡은 마을로 한국전쟁(1950) 직전까지만 해도 현 삼막삼거리 주변에 10여 호의 민가가 있었고, 그 밖의 지역은 밤나무, 참나무 등 잡목이 우거져 있었다. 9.28 수복 후 당시 시흥군 에서 난민들을 정착 이주시킨 후부터 취락이 이루어졌다. 그 후 동국실업(1968년 설립) 등의 공장과 1974년 관악역(冠岳驛. 석수2동 241)이 생기면서 번창되기 시작했다. 구룡마을이란 지명은 석수1동 3통 노인회관 자리가 풍수로 보아 좌청룡(左靑龍)이 완연한 명당지지(明堂之地)라 하여 구룡목이라 칭한데서 연유하고 있다. 구전에 따르면 이곳이 명당터라 조선시대 어느 왕비의 묘를 쓰려다가 조산이 약하다 하여 동구능에 썼다는 고사가 전해지고 있다.

삼막골(三幕洞)
밀양박씨, 진주하씨, 청송심씨 등의 누대 세거지로, 진주 하씨의 집성촌 이라 하여 보통 하씨촌(河氏村) 으로 불리워오고 있다. 이 마을에 진주 하씨가 처음 살기 시작하기는 진주하씨 문효공파(文孝公派 세종때 영의정을 역임한 河演을 말함) 후손인 하우청(河禑淸1561-1622 호는 낙선재이며 의금부도사를 역임)의 묘를 이곳 뒷산에 쓴 후에 그의 후손들이 묘하에 세거하면서 부터이다. 삼막골 (三幕洞)이란 마을 명칭은 통일신라 시대의 고승인 원효대사(元曉大師 617-686), 의상대사(義湘大師 625-702), 윤필거사(尹弼居士)의 세 성인이 삼성산에서 수도하며 유유산업 부근에 제1막을 짓고, 기아의 집(구 안양관광호텔)뒤 수도사(修道寺석수1동 241-40)부근에 제2막을 짓고, 제 3막은 석수1동 산10-1에 지어 이를 삼막사(三幕寺)라 칭했는데, 그 후 그 아래에 민가가 들어서면서 사찰명을 취한 것이라고 한다. 일설에는 이상의 세 성인이 이 마을에 처음 살아 각자 1막씩을 짓고 살았다 하여 삼막골(三幕洞)로 칭했다는 것이나, 옛 읍지나 지리지 등에 는 고려말엽 불교계를 대표하는 지공(?-1363), 나옹 (1320-1376), 무학 (1327-1405)이 삼성산에서 수도했다는 연유로 붙여진 지명이라고 하나 어느 설이 옳은 지는 알 수가 없다. 안양소년원과 구룡마을 사이에 위치 한 삼막골은 삼막천을 경계로 동쪽지역(안양소년원방향)을 웃말, 서쪽지역을 성재이라 각각 칭하고 있다. 이 마을은 구한말(1898-1904) 지방관리들의 탐학과 한국의 주권이 외세 (일본)에 의해 박탈되어 가자 분연히 일어서 농민운동을 주도한 하영홍이 태어난 곳이며, 1901년에는 하영흥이 선교활동을 할 만큼 일찌기 기독교가 전래되기도 하였다. 또 마을 어귀에는 하우청의 묘가 있다. 마을에서는 해마다 음력 7월 1일과 10월 1일에 성재이에 있는 느티나무(마을에서는 아래 서낭할아버지로 통칭)와 웃말에 있는 향나무(웃말 서낭할머니로 통칭)앞에서 나무제를 지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