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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시흥시,"옛 시흥군 법통 계승은 우리가 한다"
850만원 상금 걸고 '광고 공모전'
04.06.29 11:11l최종 업데이트 04.07.08 15:54l 최병렬(choipong)
큰사진보기1973년 안양시 승격 당시의 시흥군 관내 지도
▲1973년 안양시 승격 당시의 시흥군 관내 지도 ⓒ 시흥시관련사진보기
"경기도 시흥시를 아십니까?"
인구 38만의 시흥시가 정체성 확립과 대외적으로 시흥에 대한 인지도를 높이고 상업광고 매체를 이용한 이미지 홍보를 위해 '와우시흥 광고 공모전'을 실시한다.
시흥시가 발표한 이미지 광고 공모전 안내문에 따르면 "시는 긍정적 도시 이미지와 정체성을 확립하고 대내외적 인지도 확산 기여를 위해 총 850만원의 상금을 내걸고 대학생 및 일반인을 대상으로 7월10일까지 '와우시흥 광고 공모전' 개최한다"고 밝혔다.
특히 시흥시는 "대외적으로 시흥에 대한 인지도를, 대내적으로 시민 자긍심을 고취하기 위해 수도권 전철(차내.역내)을 비롯 신문, 빌보드판, 버스외부 등에 각종 상업광고 매체를 이용한 이미지 홍보를 실시하기 위해 수상작품을 매체에 맞게 변형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시흥시는 공모전 공지에서 "시흥시는 안양, 광명, 과천, 영등포구, 금천구 등 수도권 6개구와 6개시를 모두 분가시킨 후 유일하게 옛시흥의 법통을 계승하고 있는 유서깊은 도시이기도 합니다"라고 밝혀 이를 이미지 홍보에 반영할 것을 드러냈다.
시흥시의 이번 공모전은 그동안 지자체들이 간혹 해왔던 슬로건 또는 CIP공모 차원을 넘어, 시의 이미지 광고를 통해 효과를 극대화하겠다는 홍보전략이라고 볼 수 있다.
향토 사학자들 사이에는 이견
큰사진보기1975년 시흥군 청사 건물(현 안양1번가 삼원프라자호텔 일대)
▲1975년 시흥군 청사 건물(현 안양1번가 삼원프라자호텔 일대) ⓒ 시흥시관련사진보기
하지만 1895년 5월26일 탄생한 행정구역이었던 시흥군이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1988년 12월31일 93년만에 폐군 되기까지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시흥시가 옛 시흥군의 법통을 계승한다는 논리에 대해서는 향토사학자들 이견이 존재한다.
이번 시흥시가 공모전에 나선 배경은 "아쉽게도 사람들은 시흥을 잘 알지 못합니다.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서울특별시 금천구 시흥동과 혼동하거나 부정적 이미지를 많이 떠올리는 것이 사실입니다"라는 공지 안내에도 잘 드러난다.
시흥시 입장에서는 옛 시흥군에 속해 있던 서울시 6개구와 경기 안양,안산,부천,광명,과천,군포,의왕이 행정 개편으로 분리된 후 자신들이 끝까지 남았기 때문에 옛 시흥군을 잇는 종갓집이라고 생각한다.
큰사진보기1936년 안산군·과천군의 통합후 최융성기의 시흥군 관내도
▲1936년 안산군·과천군의 통합후 최융성기의 시흥군 관내도 ⓒ 시흥시관련사진보기
한편 옛 시흥군은 사라졌지만 지도, 사진, 문서 등 행정자료뿐 아니라 당시의 시대상과 풍물을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들이 향토사학자의 노력에 의해 수집됐다. 이 자료는 유가족과 시흥시가 소장하고 있으며 일부는 과천시에서 보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02년 1월20일 계룡산 답사 도중 운명하기까지 시흥시 향토사료실 상임위원으로 활동했던 고(故) 이한기 선생은 10만여점이 넘는 문화재 가치가 있는 자료를 수집했다. 이 자료는 시흥군의 근현대사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로 지역사회의 주목을 받고 있다.
특히 시흥시는 이한기 선생이 생전에 연구해 오던 의왕시 향토사료실에 보관한 자료가 모두 7929건으로 서책류 1771건, 행정자료 2817건, 신문류 681건, 잡지및 홍보물 336건, 팸플릿 및 안내문 1854건, 박물류 470건 등 이라고 밝힌바 있다.
시흥시 홈페이지(www.shcity.net)에 마련된 '사진으로 보는 시흥 100년'에 접속하면 주제별로 옛 시흥군 시절 14개 지자체의 흔적이 담긴 모습을 비롯 지도, 역사, 문화, 행정, 인물 등 다양한 모습이 담긴 빛 바랜 옛 사진들을 감상할 수 있다.
특히 시흥시와 시흥문화원은 '故 이한기선생 수집자료 전시회'를 2002년 10월 시흥시청 국제회의장 별관에서 개최한 바 있으며 경기도 향토사연구협의회는 국사편찬위원회 후원으로 과천시민회관에서 '근현대 지방자료와 이한기의 삶' 심포지엄을 개최한 바 있다.
큰사진보기1988년 12월 폐군되기 직전의 마지막 시흥군 관내지도
▲1988년 12월 폐군되기 직전의 마지막 시흥군 관내지도 ⓒ 시흥시관련사진보기
故 이한기선생은 평생을 향토자료 수집과 연구에 바쳐 걸어다니는 백과사전, 수집대왕, 자료에 미친 사람 등으로 불리우고 있다. 주강현 우리민속문화연구소장(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은 심포지움에서 지방사 최초의 '아키비스트'라고 규정하기도 했다.
당시 참석자들은 故 이한기선생의 자료는 생활사, 문화사, 지역사 영역에서 이보다 충실한 기초자료를 찾기 힘든 생생한 현장의 기록이자 역동적인 삶을 고스란히 담고 있어 자료를 소유한 '시흥시'가 중심이 되어 박물관 건립을 추진하는 쪽으로 의견 일치를 보았다.
이와함께 과천향토사연구회는 2003년 10월 제6회 과천향토사료전의 일환으로 시흥군과 연관된 과천지역의 40-50년대의 옛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과천의 어제와 오늘-옛 거리 사진전'을 과천시와 국사편찬위원회 후원으로 과천시민회관에서 개최한 바 있다.
과천문화원 산하 과천향토사연구회는 1998년 첫번째 과천향토사료전 이후 전통 문화발굴의 열악한 여건속에서 대규모의 향토사료전을 6년째 지속적으로 개최해 오며 향토사의 새로운 현대적 의미와 전통 발굴의 중요성을 인식시키는 계기를 제공하고 있다.
특히 현재의 안양시와 군포시 일부 지역은 조선 말기까지 과천군 하서면 안양리에 속해 있던 땅으로 안양과 과천, 군포, 의왕 등 안양지역의 지자체들은 역사적으로 과천현, 과천군, 시흥군 등으로 이어지는 행정구역 개편을 통해 동일한 역사성을 갖고있다.
따라서 이제라도 각 지자체와 개인에게 분산된 채 소장되어 있는 시흥군과 관련된 지역문화와 향토사 자료들을 통해 지역사 연구와 정체성을 정립하고 소장 자료의 전시뿐 아니라 향토문화를 발굴을 위한 각 지자체의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시흥(始興)의 명칭과 시흥군의 행정구역 개편과정
시흥(始興)이라는 명칭은 현재 서울특별시 금천구 시흥동을 중심으로 한 일원의 지역이 고구려 장수왕 63년(475)에 잉벌노현(仍伐奴縣), 신라 경덕왕 16년(757)에 곡양현(穀壤縣), 고려 태조 23년(940)에 금주(衿州)로 불러왔다.
또한 조선 태종 13년(1413)에 금천현(衿川縣)이라 하였고 정조 19년(1795)에 정조가 부왕(父王)인 사도세자의 능행을 위해 안양에 만안교를 가설한 후 고려 성종 때(991) 금주의 별호명을 취해 시흥현(始興縣)이라고 개칭한 데 유래한다.
이와함께 지도에서 사라진 시흥군은 고구려시대에 잉벌노현에 속했다가 934년 고려태조때 금주로 개칭되면서 衿川으로 불렸으며 조선세조 원년인 1456년 과천에 병합되었다가 정조19년에 시흥으로 개칭되고 1895년 5월26일 고종32년에 시흥군으로 승격되었다.
시흥군은 일제 강점기인 1914년 3월1일 부ㆍ군ㆍ면 통폐합에 따라 시흥, 안산, 과천의 3개군이 통합되었으며 1949년 8월14일 안양면이 안양읍으로 승격되면서 안양은 전원도시로 발돋움해 오다가 급격한 도시발달로 1973년 7월1일 시로 승격되면서 분리되었다.
1973년 부천군 소래면이 시흥군에 편입되고 80년 12월1일 의왕면, 소래면이 각각 의왕읍과 소래읍으로 승격, 81년 7월1일 소하읍과 광명출장소가 광명시로, 82년 6월10일 과천면이 과천출장소, 이어 86년 1월1일 과천시로, 반월지구출장소가 안산시로 분리되었다.
이어 1989년 1월1일을 기하여 군포읍이 군포시, 의왕읍이 의왕시로 각각 시로 승격 분리되고 소래읍, 수암면, 군자면을 합하여 시흥시로 승격되는 3개시의 승격 행정개편을 끝으로 시흥군은 74년만에 해체됨과 동시에 행정 명칭에서 그 이름이 사라졌다.
이와함께 시흥군은 1936년 영등포를 서울시에, 49년에 구로, 도림, 번대방을, 63년에는 3차로 신동면을 서울에 편입시켰고 89년까지 안양시, 광명시, 과천시, 안산시, 시흥시, 의왕시, 군포시 등 7개시를 탄생시키는 등 많은 행정구역의 개편을 가져왔다.
특히 향토사학자들은 시흥의 고구려 시대 지명인 잉벌노(仍伐奴)는 '늠내'를 한자로 표기한 것으로 '뻗어가는 땅'이란 뜻으로 고려 때 별호를 조선 정조 때 행정지명으로 택한 '시흥(始興)'과 같은 뜻을 지닌 '넓은 땅(廣野)'을 의미한다고 말하고 있다.
따라서 지명에 걸맞게 옛 시흥(始興)군은 서울의 영등포구, 구로구, 금천구, 관악구, 동작구, 서초구 등 6개구와 경기도의 안양시, 광명시, 안산시, 과천시, 군포시, 의왕시, 시흥시 등을 분가시켰으니 선조들의 탁견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는 평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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