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지역얘기/담론

[박찬응]두 개의 모닥불 - 한 개의 시

안양똑딱이 2016. 5. 9. 16:58
[박찬응]두 개의 모닥불 - 한 개의 시

2004/06/25 Stone & Water 관장


 

날이 어둑어둑 해질 무렵 중앙시장 한켠에 위치한 전진상복지관 강당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중앙시장 상인연합회 사람들과 능곡로 노점상사람들, 시민단체 사람들, 안양시청 사람들을 포함한 70여명의 사람들이 모여 ‘재래시장 활성화와 문화의 거리조성을 위한 토론회’를 열었다.

언뜻 재미없고 썰렁할 것 같았던 토론회는 시간이 갈수록 후끈 달아오르고 있었다. 주장은 주장대로 반론은 반론대로 마치 모닥불을 집히듯 그렇게 진행됐다. 10시가 훨씬 넘은 시각에 다시 중앙시장 골목 식당에 모여 훨씬 깊게 타올랐다.

다음날 아침부터 비가 내렸다. 태풍이 북상하고 장마가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빗줄기가 더욱 세지며 안양천의 물이 넘실거린다. 넘실거리는 안양천을 바라보고 서있는 연현중학교 교실로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 들었다.

오후 5시 여러 지역에서 물어물어 찾아온 예술가들과 주민들, 안양천살리기 네트워크 사람들, 안양시 관계자들이 속속 자리를 메웠다. 안양천 예술프로젝트 현장세미나에 참석한 사람들이다. 이종만 대표의 인사말에 이어 발제와 질의응답, 다시 발제-질의응답-토론으로 무려 5시간동안 이어졌다.

여전히 비는 퍼부었고 석수시장으로 자리를 옮겨 막걸리와 두부와 닭발과 순대가 ‘스톤앤워터’ 바닥에 차려지고 둘러앉은 자리마다 뜨거운 이야기는 밤새 타올랐다.

이렇듯 구도심에서 타오르는 불꽃은 뜨겁다. 다양한 문제와 다양한 가능성과 다양한 희망이 함께 공존하며 얽히고 설키고 오래 오래 타오르고 있다. 그 중 두 개의 불꽃을 여기 소개한다.

“만안구가 동안구에 비해 열악한 상황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피해의식에 사로잡힐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만안구는 몇 십년동안 안양의 성장 동력이었고 동안구는 허허벌판이었다. 지금 잠시 동안구에 모든 것이 집중되고 있는 것처럼 보일뿐이다. 이제 모든 가능성의 투자는 만안구로 돌아오고 있다. 단지 어떻게 잘 시작할 것인지 그것이 문제일 뿐이다” (2004년 6월18일 벽산로 문화의 거리 세미나에서 김영식 신부)

“전형화 된 미의식은 새로운 변화를 거부하고 하나의 권력으로 우리를 지배하려 든다. 우리는 이러한 미의식에 대해 일정한 거리두기가 필요하다. 따라서 안양천프로젝트는 언제나 과정에 위치해야 한다. 뚜렷한 목표의 상정도 때로는 불필요하다. ‘지금과 여기(now and here)’의 상황에서 새로운 예술이 꽃피울 수 있는 미학적 상상력이 안양천프로젝트를 지탱해주는 중요한 힘이 될 것이다” (2004년 6월19일 안양천프로젝트세미나에서 백기영 예술감독)

이글을 쓰고 있는 이 시각 빗줄기가 잠시 멈췄다. 언제 다시 흩뿌릴지 모른다. 암울했던 일제시대 시인 백석(白石)의 주옥같은 시 ‘모닥불’ 전문을 인터넷으로 찾아 읽는다.

새끼오리도 헌신짝도 소똥도 갓신창도 개니빠디도 너울쪽도 짚검불도 가랑잎도/ 머리카락도 헌겊조각도 막대꼬치도 기왓장도 닭의 깃도 개터럭도 타는 모닥불/ 재당도 초시도 문장(門長) 늙은이도 더부살이 아이도 새사위도 갓사둔도/ 나그네도 주인도 할아버지도 손자도 붓장수도 땜쟁이도 큰개도 강아지도/ 모두 모닥불을 쪼인다/ 모닥불은 어려서 우리 할아버지가 어미아비 없는 서러운 아이로 불쌍하니도/ 몽둥발이가 된 슬픈 역사가 있다.

2004-06-25 23:48: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