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보따리/기억

[기억-정진원]학의천은 알몸일 때까지만 벌모루 개울이었다

안양똑딱이 2017. 3. 18. 17:38

알몸일 때까지만 벌모루 개울이었다 
 
청계산 청계사 옆 골짜기에서 시작된 작은 실개울 물은 상청계ㆍ중청계ㆍ하청계를 거치면서 물이 조금씩 불어나 한직골 옆에 이른다.

하우고개, 원터, 독쟁이 쪽에서 내려온 물도 한직골 조금 아래쪽에서 그 물과 합쳐졌다. 광교산 바라산 골짜기에서 흘러내린 물과 능안 쪽 모락산에서 내려온 물이 백운호수에 고여 있다가 무넘기를 넘쳐 내려서 삼벌내에서 다른 두 물줄기와 합해서 아래로 흘러내렸다.

‘삼벌내’라니, 세 갈래의 물이 합쳐져서 된 시내라는 뜻인가 보다. 이 물줄기가 양지편 앞, 벌모루 앞을 지나 흐르는데, 안양 쪽으로 흘러가므로 안양천이라 부르다가 지금은 학의천이라 한다. 덕장골 안의 두 실개울, 우리 집 옆을 흘러내린 물과 동편 사당골에서 흘러내린 물이 벌모루에서 학의천과 한 줄기가 되었다.

덕장골에서 시작한 물이 모텡이를 거치면서 새꼬지에서 흘러내린 물과 합해서 벌모루 한길을 건너, 양씨 댁 토담 울타리를 끼고 논두렁길로 조금 나가면 바로 개울인데, 그곳이 벌모루 개울이었다.

벌모루 앞 개울이라서 우리는 그곳을 벌모루 개울이라 불렀다.그곳에서 물은 넓게 퍼져 흐르면서 크고 작은 돌부리에 부딪쳐 반짝거리고 있었다.

얕은 여울이 소리를 내게 마련이었다. 수많은 실개울들의 혼성합창으로 하듯이 낮은 소리로 ‘철철철 끄륵철철’ 여울의 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래서 여기가 여울이구나 하는 것을 캄캄한 밤에 보지 않고도 알 수 있었다.

여느 때는 여남은 개 돌로 된 징검다리로 건너가기도 하였으나, 여름철 물이 불어나면 그것들은 물에 잠겨버리므로 바지를 허벅지까지 걷어 올리고 그 시내를 건넜었다. 그곳을 건너서 민백이, 갈뫼, 범계 부근을 지나 군포까지 걸어 다니기도 했었다.

그곳은 여울이었다. 개울물이 거기서는 잔잔히 소리 내어 흐르고, 여름 한낮의 햇빛은 나울대는 물결 사이에서 반짝거렸다. 여울은 달밤에 화려하게 살아난다.

달밤이면 달빛이 징검다리 위에 앉아서 졸고, 물에 잠긴 달빛은 돌 끝에서 하얗게 부서지고 있었다. 그렇게 달 밝은 여울가 밤이었으면 건너편 어디엔가 물레방앗간이 있고, 그곳에 그것이 있으면 그 안에서 무슨 일이고 벌어지고 있어야 했다.

그냥 그 여울가 달밤을 견디지 못했을 것이었다. 청음증의 선녀들이 내려와 그 방앗간을 에워싸고, 기웃거리며 엿듣고 있었을 것이다. 듣고자 하면 멀리가고, 가까이 귀 기울이면 들리는 듯 사라져가는 가는 소리는 달밤과 자신들의 숨소리인 것을 공연히 다른 데 소리로만 들으려고 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여울 아래로 조금 내려가면 개울 폭이 좁아지면서 굽이치는 곳이 되는데, 그곳은 물도 조금 깊어져서 우리들이 멱을 감기에 적당한 곳이었다. 그때 ‘수영’이란 말은 없었으며, 우리는 ‘멱 감는다’ 하였다.

헤엄도 땅 짚고 물장구치다가 어떻게 하다 보니 배우게 된 개헤엄이었다. 무슨 헤엄인들 어떠하랴. 송사리, 피라미, 메기, 구구리, 버들치 등도 우리들의 물속에 함께 있었다.

그 놈들은 배를 톡톡 치다가, 아래로 내려가 그곳을 간질이고는 웃을 새도 없이 여기저기로 도망쳐 다니는 한 동네 동무들이었다. 물에서 텀벙거리며 놀다가 나가서 모래톱에 모래성을 쌓았다간 무너뜨렸다.

종달새는 우리들 머리 위에 앉았다가 한없이 수직으로 까마득히 높이 떠서 ‘지지배배’ 노래했다. 그러다가는 아래로 내리꽂듯이 하다가는 바로 높이 오르면서 ‘따라 올라와 보렴’ 하면서 뾰족한 입으로 종알종알 놀려대면서 거기서 아득히 멀리 모래톱에 우리들 조무래기들의 알몸놀이를 내려다보고 웃는 듯하였다.

벌모루 개울에서 우리들은 알몸이었다. 당시 우리들 사전에는 부끄럼이란 단어는 없었다. 우리들은 알몸일 때까지만 그곳 벌모루 개울에 다녔었다.

알몸이 부끄럽다고 느껴지게 되면서 그곳에는 여울이 소리를 그치고, 달빛이 빛깔을 잃고, 송사리와 피라미들이 달아나고, 종달새도 더는 뜨지 않았다. 더군다나 개울이 너무 얕아서 개헤엄이고 뭐고 되질 않게 되었던 것이다.

 

수필가이자 문학박사인 정진원 선생은 의왕시 포일리 출신(1945년생)으로 덕장초등학교(10회), 서울대문리대 지리학과를 졸업했으며 서울대 대학원에서 지리학, 석·박사과정을 마쳤다. 박사학위논문으로 ‘한국의 자연촌락에 관한 연구’가 있다. 성남고등학교 교사, 서울특별시교육청 장학사, 오류중학교 교장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