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보따리/기억

[기억-정진원]덕장초등학교의 추억, 분유와 디디티

안양똑딱이 2017. 3. 18. 17:41

초등학교의 추억, 분유와 디디티 
 

모두가 6ㆍ25 전쟁 이후에 시골 초등학교에서 벌어졌던 일들이었다. 요즘하고 달라서 당시 시골의 초등학교는 새로운 변화와 놀라운 쇄신의 중심점이었다.

우선 책상과 걸상이 있는 교실이 얼마나 기이한 공간이었던가. 언제 의자라는 것에 앉아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유리창이 있는 교실, 기다란 복도, 잃어버리면 어쩌나하면서 고무신을 얹어놓곤 했었던 복도 끝에 있었던 신발장, 분필과 흑판, 처음에 낯설었던 동무들 등이 모두 예사로운 것들이 아니었다.

바야흐로 배워서 알게 되는 신학문의 깊은 맛을 무엇에 비견할 것인가. 양주동이 영어 문법 공부의 처음에 나오는 3인칭의 의미를 알기 위해서 눈길 얼마를 걸어가서 그 뜻을 배워 알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지 않은가.

너와 나를 뺀 우수마발(牛搜馬勃)이 모두 3인칭이라고 했단다. 그곳에 초등학교가 있어서 촌놈의 어쭙잖은 지적호기심을 채우고도 남음이 있었던 것이다.

그뿐이랴. 그곳은 춥고 배고픔의 고통을 덜어주는 장소였으며, 물것들을 퇴치해서 결국 가려운 곳을 대신 긁어주는 일까지도 학교가 했었다.

얼마 만에 한 번씩 쓰리쿼터라는 반트럭(도라꾸)이 굉장히 큰 분유통을 싣고 왔었다. 미국 아니면 캐나다산 분유였던 것 같았다.

어떻게 만들어져서, 그곳까지 오게 되었는지는 우리의 알 것이 아니었다. 마냥 신기하고 반가울 뿐이었다. 사람이 먹으라는 것인지, 가축용 사료인지도 전혀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분유는 커다란 종이 드럼통에 들어 있었다. 그것을 한 바가지씩 퍼주면 집에 가져가서 물을 붓고 끓이면 죽처럼 되다가 식어서, 딱딱한 노란 덩어리가 되었었다. 허기진 김에 그것을 한 덩어리씩 맛있게 빨고 다녔다.

그렇게 노랗게 굳어지는 것을 보면 지방을 제거하지 않은 천연 그대로의 우유를 건조해서 만든 분유인지, 또 다른 무엇인지 모를 일이었다. 전후 복구용, 빈민구제용으로 보내준 것이니 가축 사료용을 보내기야 했겠는가, 생각해보지만 조금은 찜찜한 마음이었다.

하여튼 그 분유를 배급하는 날은 무슨 잔치 집 같은 분위기가 되어서 그렇게 많은 분유를 시골에 있는 우리들에까지 보낼 수 있는 미국이란 나라는 도대체 얼마나 훌륭한 나라일까, 동경하고 선망해서 마지않았다.

그 때는 웬 물것들이 그리 많았는지 그 시절에 풍성한 것은 그것들뿐이었다. 이, 벼룩, 빈대, 파리, 모기, 쥐이 등등이었다. 우리에게 주는 고통도 그 모양대로 각기 달랐다. 이가 물면 은근하게 가려웠다.

물어도 무는 것인지, 쏘는 것인지, 긁는 것인지 모를 정도로 은근한 놈이었다. 안방용, 핫바지용으로 꼭 맞는 것이 바로 이였다. 대개는 옷 안의 솔기 안을 좋아해서 솔기를 따라 은거하지만, 따듯한 이불속에서는 활성화되어 여기저기로 기어 다니면서 괴롭혔다.

머릿속으로도 들어가 알을 까놓았다. 이 알이 서캐이다. 서캐에서 갓 부화된 새끼 이를 가랑니라고 하였다. 본시 이는 흰색이나 목욕을 하지 않거나, 더러운 옷이나 머릿속에서 자란 이는 검은색을 띠었다.

옷과 머리에 이와 서캐 천지여서 캄캄한 속에서도 이를 손끝으로 더듬어 잡을 정도였다. 화롯불에 털어서 잡기도 하고, 겨울밤에 옷을 벗어 밖에 내놓아 동사시키는 방법도 있었다. 누이들의 단발머리에 서캐가 함빡 끼었으므로 서캐훑이로 참빗이 필수품으로 집안에 늘 있었다.

봄날 양지쪽에 있으면 옷 안의 이들이 옷 밖으로 나와서 기어 다녔다. 검은색 옷을 입으면 등에서 하얀 이가 기어 다니는 것은 아닌가하여 등 뒤가 몹시 걱정이 되었었다.        

이의 퇴치 방법에 대해서는 앞서 약간을 기술한 것이 있었다. 그러나 그러한 방책들이 결국은 미봉책이었다. 그러나 우리 초등학교에서 자행된 작전은 초토화 그것이었다.

당시로서는 이름도 생소한 디디티를 분무기에다 넣고, 우리들 등허리 옷을 들추고, 괴춤을 붙들고 엉거주춤하고 있는 사이에 아랫도리에다 디디티를 뿜어내는 것이었다. 여자 애들은 머릿속에까지도 분무하였다.

디디티의 효과는 대단한 것이었다. 씻은 듯이 이가 사라지게 되었던 것이다. 고마운 일이라고 생각했었다. 이까지 잡아주는 학교이며, 미군이라고 생각하였다.

월남전쟁에서 미군들이 고엽제를 하늘에서 흩뿌리면, 우리 군인들은 그것이 더위를 식혀주기 위해서 뿌려주는 물로 알고 뛰어나가 일부러 맞았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 때 우리들과 함께 디디티 세례를 받았던 내 초등학교 친구 하나는 폐암으로 죽은 지 몇 년이 되었다. 지금 나는 디디티/고엽제와 폐암의 인과관계는 무시해도 좋은 것이기를 바라고 있을 뿐이다.   

 
수필가이자 문학박사인 정진원 선생은 의왕시 포일리 출신(1945년생)으로 덕장초등학교(10회), 서울대문리대 지리학과를 졸업했으며 서울대 대학원에서 지리학, 석·박사과정을 마쳤다. 박사학위논문으로 ‘한국의 자연촌락에 관한 연구’가 있다. 성남고등학교 교사, 서울특별시교육청 장학사, 오류중학교 교장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