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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도시 안양, 역사의 흔적들

안양똑딱이 2017. 4. 1.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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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C 안양 vs FC 서울. 한국 축구사의 새로운 한 페이지를 쓸 지도 모를 흥미진진한 매치 업이 13년만에 성사됐다.
2017년 3월 29일 저녁 8시, 안양종합운동장에서 열린 2017 KEB 하나은행 FA컵 3라운드(64강) 안양과 호남대의 경기에서 안양이 1-0 승리를 거두고 서울이 기다리고 있는 4라운드(32강전)에 진출함에 따라 오는 4월 19일 서울과 역사적인 대결에 나선다.
딱 13년전인 2004년 3월 29일. 이날은 안양을 연고지로 했던 안양LG가 서울시와 연고협약 조인식을 하면서 FC서울로 이름을 바꾼 날로 당시 허창수 구단주와 이명박 서울시장이 협약서에 싸인을 함에 따라 안양 연고 구단이 사라진 가슴 쓰린 날이다.
럭키금성이 전신인 안양LG는 프로축구연맹이 지역연고제를 시행한 1996년부터 안양에 터를 잡았다. 1998년 FA컵과 2000년 K리그 우승 등을 차지하며 강호로 떠올랐다. 흥행 성적도 좋았다. 1996년부터 2003년까지 110번의 리그 홈경기에서 경기당 평균 관중이 1만1000명이 넘을 정도로 안양시민의 축구 사랑은 뜨거웠다.
2004년 초 안양 LG가 연고지 이전을 추진한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안양 팬들은 거세게 반발했다. 서포터스는 시민을 대상으로 반대 서명운동을 벌이고 모기업 LG 제품 불매 운동에 나섰다. 서포터스 회장은 삭발까지 했다.
다른 구단의 팬들도 연고 이전을 반대하는 분위기였다. 안양 팬들은 축구회관 앞에서 연고 이전 반대 시위를 벌였는데 당시 안양과 ‘지지대 더비’를 펼치며 라이벌 관계였던 수원 삼성 팬들도 나와 힘을 보태기도 했다.
안양LG가 연고 이전을 한 후 안양 팬들은 프로축구단 창단을 추진했다. K리그 챌린지(2부리그)가 출범한 2013년 열매를 맺었다. 현 FC안양의 서포터 중에는 옛 안양 LG를 응원하던 팬들이 많다. 당시 서포터스 명칭인 ‘레드’도 그대로 이어오면서 축구도시 안양의 역사를 이어가고 있다.
한편 정확히 언제부터 였는지는 모르지만 안양은 축구로 유명한 도시가 되어 있었다.
안양 축구의 역사는 무려 1940년대로 거술러 올라간다. 당시 전국대회에서 우승을 하는 등 저력을 과시할 만한 도시였다는 것은 주목할만한 사실이다.
이같으 사실은 당시에 선수로 직접 참가했던 안양축구계의 원로 이서구 옹이 증언한 것으로 “아산군 체육회가 주최하고 조선일보가 후원하는 전국 유명팀 초청경기에서 안양팀이 우승했다”는 것을 사진과 함께 공개하면서 알려지게 되었다.
이서구 옹을 비롯한 많은 원로들의 증언에 의하면 어렸을 때부터 크고 작은 축구대회가 많았고 축구와 친숙한 환경에서 자랐던 것이 축구와 인연을 맺게된 이유였다고 한다.
1950~70년대에 선수로 활약했던 안양축구계의 원로들은 지금도 한 때는 안양이 축구의 최강이었다는 자부심을 잊지 않고 있다.
안양 토박이들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원로 축구인으로 이서구, 이규영, 정봉수, 박노성, 이규신, 심재덕, 정동준, 박성학, 이규남, 이석노, 권일상, 한광석, 이무용, 한재석 등이 있다.
1960년대 안양읍내 항공사진을 보면 안양3동에 있던 금성방직 공장안에 천연 잔디가 깔린 축구장까지 보인다. 당시에는 국내에 잔디구장이라고는 전국에 3개 밖에 없었는데 이곳 금성방직 축구장에는 한국 국가대표팀이던 양지선수단을 비롯 공군사관학교 축구부, 실업팀 등이 와서 연습경기를 했다. 당시 만안초등학교와 안양중학교에 다니던 학생들이 시멘트블록 담장 중간 중간에 난 구멍으로 이회택 등 국가대표 선수의 볼 차는 모습을 보며 축구의 열정을 불태워 1970년에는 안양중학교와 안양공고 축구부가 탄생한다.
안양공고 축구부는 이후 각종 축구대회에서 30여 차례나 우승을 차지한다. 이 무렵 축구하면 안양을 떠올리던 부흥기였지요. 이름을 날린 선수로는 현 FC안양 감독인 김종필씨를 비롯 정해원, 기덕서, 이영표, 조윤환 등 상당수가 안양공고 출신이거나 안양중학교 출신으로 이들은 안양이 축구명문 도시로 이름을 드높이는데 지대한 영향을 끼쳤고 프로 축구 구단 유치에도 많은 힘이 됐다.
안양은 1973년에 시로 승격됐는데 같은 해 7월1일에 안양시축구협회가 창립한 것을 봐도 안양에서 축구가 차지하는 위치가 상당했음을 알 수 있다. 당시 안양시의 인구는 5만명에 불과했지만 축구 열기만은 전국 최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