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머신/옛사진읽기

1960년대 안양 구시장 가는길 땡땡땡 철길 건널목

안양똑딱이 2017. 8. 28.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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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속 건널목은 1930-60년대 안양읍내 1번 국도와 안양역에서 시대동(안양1동) 구시장으로 가기 위해서는 꼭 지나가야 할 연결 지점으로 현재의 진흥육교가 있던 자리로 사진 속 건널목 간수 뒷쪽으로 안양역이 희미하게 보인다.
당시에는 열차가 가까이 다가오면 건널목에 차단봉이 내려지고 땡땡땡땡땡~~~ 하고 종소리가 크게 들린다하여 '땡땡땡 건널목'이라 불리오던 이 건널목은 청계, 과천에서 1번국도 또는 안산으로 연결하던 간선도로가 지나던 주요지점이었다.
건널목 서쪽에는 안양역과 1번국도, 행정타운이, 동쪽에는 시흥군 최대 규모의 안양시장(구시장. 1926년 1월 28일 개설)이 자리하고 있었는데 안양시장은 1929년 안양 최초로 전기가 송전(送電)될 만큼 1930-60년대 안양의 다운타운이었다.
건널목 오른쪽으로 구시장 끝자락에는 우시장도 있었다. 우시장을 지나 안양천의 수푸루지 다리(현 임곡교)를 건너면 수푸루지 마을로 능선 사이 개울옆으로 집들이 있었고 산비탈(현재의 대림대학교)에는 판잣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수푸루지 마을에서 자그마한 능선(이마트앞)을 돌아 언덕(안양운동장 남쪽)을 넘어가면 수촌마을이 나오고 인덕원을 지나 청계와 과천, 말죽거리로 갈 수 있었는데 안양(버스정류장_현 남부시장 문화철물옆)에서 버스가 다닐 정도로 사람과차량의 통행이 적지않아 이 건널목에는 철도 건널목 간수가 배치되어 있었다.
현재의 진흥육교는 전철이 개통될 무렵인 1975년에 개설되었는데 욱교가 놓여지기 이전 땡댕땡 건널목 좌우로는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2층 건물들이 있었으며 이곳에는 광창라사, 안양 최초의 다방, 이발소 등이 있었다.
지금은 전기(전철) 위험 때문에 철길 횡단은 꿈도 못 꾸지만 당시 건널목에서 안양역으로 이어지는 철길옆은 주민들이 걸어다니던 통행로였다. 또 아이들은 기차가 오나 레일에 귀를 대고 전해지는 진동 소리를 듣기도 했으며 레일에 못을 놓아 기차가 지나간후 납작해지면 이를 갈아 연필깍는 칼로 사용하기도 했던 공작소이자 놀이터이기도 했다.
사진 우측으로는 한국특수제지 공장으로 가던 골목길이 있었다. 골목길 양쪽으로는 음식점과 술집들이 있었고 막걸리집이 다섯개가 있었다. 먹걸리집들은 한국특수제지 노동자들이 근무를 마치고 들리는 단골 참새 방앗간이었다.(김귀연 전 안양2동 주민자치위원장 기억)
1963년 사진속 위치에서는 부산발 서울행 재건호 열차가 탈선 사고를 일으킨 현장이기도 하다.
재건호는 서울과 부산을 오가던 특급열차의 명칭으로 이날 사로 객차 7량이 탈선하면서 승객 20여명이 중경상을 입었고, 기관차가 대파, 1호칸과 식당칸이 소파, 철도 레일 백여미터가 부서지는 등 당시로서는 매우 큰 사고로 대한뉴우스(제404호/ 1963년 2월 16일)에 보도되고 국무회의에서 대책을 논의하기도 했다.
안양시장(구장)은 안양천과 연접한 저지대로 홍수가 나면 하천의 범람으로 침수가 되기 일쑤였고, 6.25전쟁이후 피난민들이 유입하며 판잣집들이 대규모로 들어서고 더우기 1961년 11월 6일 안양4동에 새시장(현 중앙시장)이 개설되면서 상권이 이전하자 60년 중반이후 점차 쇠퇴의 길로 접어들었다가 주거환경개선사업에 따라 시장 주변에는 안양1동 주공뜨란채, 한국특수제지 안양공장 부지에는 안양1동 삼성레미안, 태평방직 자리에는 안양1동 진흥아파트(현재 재건축 추진)가 들어서면서 옛 모습은 흔적도 사라지고 아파트 단지로 바뀌었으나 1930-60년대 안양읍내 다운타운이었던 시대동 주변이 근대 안양 발전의 시금석이었음은 기억해야 할 사실이다.
중앙동 동쪽으로 한국제지와 진흥아파트 사이에 자리잡은 마을이다. 안양의 중심부인데다가 지리적으로 군포, 의왕, 과천, 광명, 수암, 군자등이 인접해 있어 시장으로서는 최적지였다. 이곳에 시장이개시( 開市)되기는 1926 년 1월 28일이었고, 거래되는 품목은 농산물을 위시하여 축산물, 포목, 일용잡화까지 다양했다.
개시(開市)한 1년후(1927)의 년간 매출액을 보면 농산물 이 15만 6천원, 잡화가 21만 2천원, 그밖에 직물, 축산물, 수산물 등 모두 50여 만원에 달했다. 상인들은 개시 1주년을 기념하기 위하여 1927년 6 월 4일 단오절을 기해 대대적으로 기념식을 거행키로 했는데, <동아일보> 1927년 6월 1일자에 안양시장일주기념(安養市場 一週紀念) 이란 제하에 다음과 같이 보도하였다.
"경기도 시흥군 서이면 안양은 군의 중앙일뿐 아니라, 교통이 편리하고 따라서 산물도 상당함으로 동면에서는 작년중에 안양시장을 설치한 후 유래 성적이 비상히 양호하던 바 더우기 안양번영의 일책으로 오는 6월 4일(단오일)을 기하여 전시장(全市場) 일주년 기념식을 성대히 거행하리라 하며 여흥으로 예기의 가무와 오산청년(烏山靑年)의 소인극(素人劇) 외 안양소년척후대 주최의 축구대회 및 동화동요회 등이 있어서 많은 흥미가 있으리라더라"
1주년 기념식은 예정대로 동년 6월 4일 오후 2시부터 안양시장 내 광장에서 수천의 관객이 참석한 가운대 전대(田代) 발기인 대표의 식사와 조한구 서이면장의 경과보고, 신미(神尾) 시흥군수의 고사, 종문웅(안양금융조합 이사), 조희철(동아일보 시흥지국 기자), 엄기승(안양공보교 기성회장)의 축사에 이어 기녀들의 기무, 소인극등을 공연해 일대 성황을 이루었다.
안양시장측에서는 이후로도 씨름대회.그네대회 등을 개최하여 시장의 번영을 도모하였는데, 일례로 1933년 8월 25일, 8월30일, 9월 4일 등 장날을 기해 안양역 광장에서 안양씨름대회를 개최했고, 같은해 음력 7월 30일 장날부터 추석날까지 매 장날마다 씨름대회를 개최해 1등에 황소1두, 2등에 광목 1필이 상품으로 수여되었다.
그러나 이곳이 저지대로 홍수가 나면 안양천의 범람으로 침수가 되기 일쑤였고, 더우기 1961년 11월 6일 안양4동으로 시장이 이전하자 점차 쇠퇴하기 시작했다가, 옛 태평방직 자리에 대단위 아파트(진흥아파트)가 들어서자 번성되기 시작하였다. 1929년에 안양지방에서는 최초로 전기가 송전(送電)된 곳이기도 하다. 시대동(市垈洞) 이란 마을 명칭은 안양시장이 있었다는 연유에 기인한 것이며, 일명 구시장(舊市場) 이라 부르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