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머신/옛사진읽기

[20220209]1960년대 안양 평촌_ 초가집이 대부분이던 민배기와 벌말

안양똑딱이 2022. 2. 10. 04:36

2022.02.09/ #기록 #기억 #아카이브 #옛사진 #안양 #평촌 #벌말 #민배기 #응답하라1960/ 1960년대의 안양 평촌동_벌말(坪村)과 민배기(禿朴只, 民伯洞).

안양 평촌동은 인덕원 남쪽에 위치한 마을로, 과거 민배기와 벌말 지역이다.
 
평촌동 : 민배기(禿朴只, 民伯洞)
삼태기처럼 오목하게 생긴 마을로 벌말과 갈미 사이에 위치해 있다. 예전에 과천.인덕원. 갈미 등은 관아와 원(院)이 있어 지체 높은 사람들이 많이 살았던데 반해, 이곳은 좀 외진 곳이다. 서울과 삼남지방을 왕래하는 행려자들이 날이 저물면 민박을 했다고 한다. 그 후 부터 이 마을을 민박이(民伯洞)라 했다가, 후대에 내려오면서 민배기(民伯洞)로 불리웠다..
정조의 <<원행정례 >>에는 독박지(朴只)로 기술되어 잇는데, 이는 민배기를 한자 화한 표기라고 한다. 즉 독(禾) 은 석독(釋讀)하여 민 - 으로 읽어 민배기 로 나타낸 것이다. 괴산 음씨가 처음으로 세거한 민배기마을은 동쪽 지역을 등너머라 칭하고, 그 외 지역은 민배기로 통칭된다. 또 마을 중앙을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길이 있어 그 서쪽지역은 평촌 신도시 개발구역에 편입되었다.
 
평촌동 : 벌말(坪村)
산이 없는 허허 벌판에 자리잡고 있어 벌말(坪村)이라 불렀는데, 그 후 마을이 또 생겨 두 벌말 또는 이 평촌(二坪村)이라 했으며, 이를 줄여 이동리라 칭하였다. 예전에는 한강에서 과천-안양에 이르는 모든 취락 중 가장컸던 벌말은 조선 초기에 괴산 음씨(후손-음순배, 음경택 등)가 최초로 살아 음촌 이라 부르기도 하였으며, 그 후 밀양 박씨, 전주 이 씨, 김해 김씨 등이 세거해 왔다. 벌말은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 서울-과천-군포-남양간 도로를 개설한 후 1969년에 동일방직 (평촌동 1)을 비롯하여, 오뚜기식품(평촌동 160), 1982년에 가나안제과(평촌동 81-4) 등의 공장이 건립되면서 인구가 늘기 시작하였다. 발말 대부분 지역이 평촌신도시로 개발된 이후에도 동일방직(현 대림아파트) 뒷편에 예전 마을 일부가 마치 구도심처럼 남아 유지돼 오다 최근에 재개발이 추진중이다. 벌말 출신 인물로는 2018년 7월28일 타계한 고 음순배씨를 손꼽는다. 음순배 씨는 안양시의회 1.2대 시의원을 역임했으며, 안양시새마을회 2.3.6.7대 회장을 지내면서 안양시 새마을운동의 기틀을 마련한 인물로 구(舊) 평촌동 청사 부지 기부, 장학사업 전개 등 기부문화 확산에 크게 기여했으며, 안양시 새마을회관 및 평촌동 벌말경로당 건립 등 지역의 숙원사업을 해결하는 등 지역 발전의 선구자로 장례 영결식을 안양시 최초의 시민장(市民葬)으로 개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