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지역얘기/담론

[최창남]삼가 옷깃을 여미며

안양똑딱이 2016. 5. 3. 16:44
[최창남]삼가 옷깃을 여미며

빛된교회 목사


 

삼가 옷깃을 여미며 (안양시민신문에서 03/07일자)

여든 네 돌을 맞는 지난 삼일절 아침 동안구에 위치한 자유공원에서는 의미 있는 행사가 열렸다.

안양 출신의 독립지사 두 분의 동상 제막식이 그것이다. 우봉(牛峰) 이재천 선생과 해평(海平) 이재현 선생이다. 이 두 형제는 아버지 이용환 선생의 손을 붙들고 어린 시절 만주로 갔다. 아버지 이용환 선생은 김구 상해임시정부수반과 함께 독립운동을 하였고, 우봉과 해평 두 형제는 민족의 지도자인 김구 선생의 깊은 사랑을 받았다.

이러한 성장 환경 속에서 우봉과 해평은 독립운동가로 자랐다. 형인 우봉은 22세에 일경에 의해 체포되어 27세의 젊은 나이로 일제의 고문 속에서 서대문 교도소에서 숨을 거두신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제에 의해 자료가 유실되어 정확한 내용도 시신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동생인 해평은 살아 남아 그들이 그토록 염원하던 해방을 맞이하였고, 우리들의 곁에서 1997년까지 함께 하셨다. 우리는 우리 곁에 그런 분이 계신다는 사실조차도 알지 못하였지만 말이다.

해평은 참으로 오랜 동안 우리 곁에 계셨다. 우봉과 해평에 대한 추모글을 쓰며 조금씩 아주 조금씩 접하게 된 해평의 삶은 해방 전 못지 않게 해방 이후의 삶이 빛난다. 해평은 해방 전에는 민족의 독립을 위해 일제와 생명을 걸고 싸웠지만, 해방 후에는 진정한 독립과 자유, 평화와 하나됨을 위해 자신과 싸웠다.

1963년 ‘독립유공건국공로훈장 단장’을 받은 해평은 그 자신의 영달을 위해 보장된 수많은 길을 거부하고 자신이 생명을 걸고 지켜낸 삶의 가치, 사람의 가치에 충실하였다. 그저 우리의 가난한 이웃으로 남아 있었다.

아주 작고 보잘 것 없는 공훈만으로도 크게 부풀리어 자랑하는 세상에서 마땅히 자랑할만한 삶을 사셨음에도 가난한 이웃으로 조용히 남아 계셨던 것이다. 그렇게 우리에게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길을 가르쳐 주신 것이다.

자유 공원의 가운데 손을 맞잡고 서 있는 우봉과 해평의 눈은 역사를 바라보는 듯하다.

역사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 모두를 바라보고 있는 것 같다. 우리를 바라보며 소리 없이 말하고 있다. 우리에게 조국은 생명을 바칠만한 값어치가 있었는데 해방된 조국에서 풍요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는 당신들에게 조국은 무엇인가 하고 말이다.

알지 못하고, 잊고 있었던 우봉과 해평의 동상이 서는 것을 보며 역사의 진실을 만난다. 역사의 진실이란 언제나 이렇게 드러나는 것이다. 숨겨져 있는 것 같으나 어느 순간에 그 빛을 찬란하게 발하며 나타나 남겨진 우리들에게 말하는 것이다. 진실과 거짓, 독립운동과 친일의 역사 속에서 아직까지 우리들의 마음 속에 남겨져 있는 대립과 증오를 내려 놓으라고 말이다.

역사의 진실이란 드러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말이다. 이제 모두 하나가 되라고 말이다. 그것이 생명을 바쳐 싸워 온 수많은 우봉과 해평들이 평생을 바쳐 그리워하며 추구하던 참 평화의 정신이라고 말이다.

참으로 이제야말로 미움과 대립의 싸움을 거두고 마음을 모아 하나가 될 때이다. 두 분의 고결한 삶 앞에서 삼가 옷깃을 여민다.

2003-05-28 09:44: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