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머신/옛사진읽기 602

1960년 안양여고 개교 및 입학식 풍경

#기록 #기억 #역사 #안양여고/ 안양여고 개교 및 입학식 풍경으로 2010년 개교 50주년 기념식에서 전시되었던 사진이지요. 안양여고는 사진속 표기를 보듯이 여성의 교육에 큰 비중을 두지 않는 시대였던 단기 4293년 4월 11일(1960년) 개교해 50년이 넘는 전통을 가진 사립여고로 개교 당시 위치인 안양시 만안구 안양로 357에 자리하고 있지요. 참고로 안양여중은 안양여고 보다 앞선 1952년 3월 22일 개교했지요. 사진속 여학생 주인공들은 이제 60대 중반의 할머니로, 교실이 있던 건물은 이제 없어졌지만 현재까지 1만3000여명의 졸업생을 배출한 안양지역 여성교육의 효시라 할 수 있지요. 사진속 정중앙에 앉으신 핸섬한 선생님이 초대 김완종 교장선생님이신데 제 동창 김장경의 아버님으로 2013년..

1970년 안양중학교 축구부 우승 거리퍼레이드

#기록 #기억 #안양 #축구 #안양중 #옛사진/ (사진출처: 안양시사) 안양중학교 축구부가 창단 3년 만인 1970년 전국대회를 제패하고 돌아와 안양시내에서 우승 퍼레이드 행진을 하고 있다. 비록 멋진 카퍼레이드를 펼치는 못했지만 많은 시민들이 거리로 나와 박수를 치며 축하를 보내주었다. 선두에 있는 분이 당시 안양중학교 체육교사로 축구부 코치를 했던 김진강 선생님이다. 김 선생님은 안성중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다가 안양중학교 윤석제 교장의 권유로 창단시 육군병참단 축구선수 출신 이규남 코치에 이어 안양중 축구부를 맡아 안양 축구를 전국으로 명성을 날리게 한 장본인으로 80년대까지 축구선수를 지도하고 이후 장학사와 교장선생님으로 재직하다 은퇴한 안양 축구계와 교육계의 원로라 할 수 있다. 안양은 축구의 ..

1967년 안양읍내 포도밭의 풍경

#안양 #기억 #기록 #옛사진 #안양포도/ 교과서에도 실렸던 '안양포도' 를 아십니까, 1967년 9월 16일 안양읍내 포도밭의 풍경으로 이 사진은 브라질로 이민간 저의 초등학교 동창 신수성군(사진 오른쪽 위 얼굴)이 제공해 준 사진인데 안양중학교에 교편을 잡고 계시던 수성이 아버님이 찍으셨지요. '포도'하면 '안양'이라 말할 정도로 1970년대만 해도 안양유원지(현 안양예술공원)는 물론 호계동에는 포도원이란 지명이 있을 정도로 안양시내 곳곳에는 대규모 포도밭이 있었지요. '안양 포도’는 부천의 복숭아, 수원의 딸기와 함께 지난 70년대 '경기삼미(京機三味)로 불리며 교과서에도 실렸었고, 1967년 9월 15일 경기도 안양 경향포도조합에서 국내 최초 양조포도주를 생산했다는 기록을 보더라도 안양포도는 명물..

1970년대 부곡(현 의왕역) 철도관사촌

#기록 #기억 #의왕 #부곡 #옛사진/ 1970년대 말 시흥군 부곡리에 있던 철도관사촌의 모습으로 일제강점기 철도인들의 삶터이자 살아 있는 역사의 한 편린이다.(출처 의왕시사) 1900년 초에 경부선이 부설되고 조선총독부 산하의 철도국은 1943년 지금의 의왕시 삼동 192번지 일대를 철도기지화 시킨후 철도국 종사자를 위한 소규모 신도시를 계획하였고 100여동 200세대의 관사단지(官舍團地)를 조성하였다. 용산에 근무하는 철도관련 종사자들이 부곡관사로 이주해오면서 그들의 통근편의를 위하여 1944년 수원역과 군포역 사이에 철도역을 신설했는데 이 역이 부곡역(2003년 의왕역으로 명칭변경)이다. 부곡역은 경부선 수원∼군포 사이에 있는 역원이 배치된 간이정차장으로 위치로는 경기도 수원군 일왕면 삼리였고 철도..

1968년 여름의 안양유원지 공짜풀장앞

#안양 #안양유원지 #안양예술공원 #닐미샬로프(http://www.mishalov.net/) #기록 #역사/ 여름철 피서지로 한해 40-100만 인파가 몰렸던 1968년 안양유원지의 여름 풍경으로 당시 석수동 미군부대에 근무했던 닐 미샬로프씨가 코닥 슬라이드필름으로 촬영한 사진입니다. 사진 나무 뒷쪽은 당시 공짜풀로 뚝을 경계로 오른쪽은 제1풀 오른쪽은 제2풀이라 불렀지요. 공짜풀은 1977년 대홍수로 처참히 파괴되고 이후 안양시의 유원지 재개발사업으로 모습이 완전히 바뀌고 말았지요. 사진 위치는 현재 관악교 다리 아래쪽을 추정됩니다. 길 건너편에는 당시 왕실캬바레가 있던 데이지아 카페가 있는 곳으로 사진 속 나무는 40년의 새월이 지나면서 아름드리로 커졌지요. 나무 밑에서 자동차 타이어속의 고무 쥬브를..

1960년대 1번 국도와 안양유원지 가는길

#안양 #기록 #기억 #역사 #옛사진 #안양유원지 #안양예술공원 1970년대 초까지만 하더라도 수도권 시민들의 여름철 피서지로 각광받던 안양유원지(현 안양예술공원) 입구인 안양교 사거리의 1960년대 말 모습으로 안양유원지 개장을 앞두고 도로정비 공사가 한창입니다. 사진속 아치가 서 있는 자리는 현재 안양예술공원 지하차도이며, 사진 아래 의 비포장도로는 당시 안양읍내를 관통하는 유일한 도로였던 1번국도(현 만안로)로 왼쪽은 서울방향이며 오른쪽은 안양역 방향입니다. 당시에 사진 왼쪽에는 현 삼막천으로 이전복원하기 전의 만안교 다리가 있었으며, 그 위로 자동차들이 지나다녔습니다. 아치 뒷쪽으로는 경부선 철길인데 사진 오른쪽에는 피서철에는 운영되는 안양유원지 임시 정거장이 설치돼 있는 모습이 보입니다. 열차가..

1970년대 안양 만안교에는 넝마주의가 살았다

#안양 #기록 #기억 #옛사진 #만안교 #정조/ 정조임금이 축조한 다리 안양 만안교의 1970년대 모습으로 현재의 이전 복원된 위치가 아니라 안양천위에 놓여져 있던 것을 찍은 사진입니다. 만안교는 안양교(구도로)를 지나 안양예술공원 지하차도앞 교차로에서 서울방향으로 약 20미터 지점(현 영화아파트) 앞에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1번 국도확장사업으로 1980년 8월 약 200미터 북쪽의 안양시 석수동 260번지 석수교회앞 삼막천 위로 옮겨 다시 축조한 것이지요. 안양천 물줄기가 일제강점기에 직강공사를 통해 돌려지면서 다리로서의 기능을 상실한 당시의 모습을 보면 홍예(교각) 대부분이 땅속에 묻혀있고, 그 아래에서는 당시 넝마주의 아저씨들이 살았답니다

1980년 만안교 해체 이전 복원 공사 현장

정조 임금의 화성 능행차를 위해 축조된 만안교를 1980년 이전.복원하기 위한 공사 모습으로 만안교의 해체하여 다시 복원하기 위해 현재의 삼막천에 깔아놓은 귀중한 사진으로 아주 어렵게 찾았습니다. (출처: 안양시 자료) 현재의 만안교 위치는 원래 있던 자리가 아니지요. 당초 만안교는 안양예술공원 지하차도 들어가는 교차로에서 서울방향으로 약 20미터 지점(현 영화아파트)에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1번 국도확장사업으로 1980년 8월 약 200미터 북쪽의 안양시 석수동 260번지 석수교회앞 삼막천 위로 옮겨 다시 축조한 것이지요. 1972년에 촬영한 기록 사진을 보면 당시에는 교각의 대부분이 땅속에 묻혀있고, 다리위에 난간이 추가 설치돼 변형됐음을 보여주는데 현재의 다리보다 더 길었습니다. 제 어릴적 ..

1960년대 안양기독보육원 주변 풍경

#옛사진 #기록 #기억 #안양/ 1960년대 말의 안양읍내 현 안양2동 지역의 풍경으로 사진 아래 숲이 있는 곳은 당시 안양기독보육원(현 좋은집)이며, 그 위로 안양천이 흐릅니다 . 안양천 중앙으로는 자그마한 다리 하나가 보이고 그위로는 서울 수원간 1번국도(석수동에서 안양역앞을 지나 구 안양경찰서로 연결)가 지나가고 있습니다. 1번 국도 위로 보이는 동네가 안양2동 주택들이고 그 위 왼쪽 뒤로 보이는 큰 건물이 금성방직(현 대농단지)입니다. 1번국도 오른쪽 윗쪽에는 3층짜리 자그마한 건물이 보이는 당시 안양문화원(현 안양2동 주민센터)이 있던 곳으로 안양 최초의 도서관기능도 겸했지요. 1번국도 오른쪽 끝자락 위로는 하천의 흔적이 보입니다. 이 하천은 수암천인데 당시 만안초등학교 앞과 박달동을 통과한 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