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1.18/ #기록 #옛사진 #폭발사고 #폐허 #안양역/ 안양을 폐허로 만든 한국전쟁 당시인 1951년 초(사진에는 1950.7로 되어있으니 오기로 보인다) 안양역 폭발사고 당시 모습으로 건축사 최승원 선생님님이 찾아낸 자료다.
안양역 폭발사고는 1·4후퇴중인 1951년 초 대량의 폭발물을 수송하던 탄약열차가 고장으로 안양역 정차 중에 폭발한 사건이다. 폭격을 맞아서 폭발했다고 하기도 하고, 사고로 폭발했다고도 하는 이 폭발사고는 이리역 폭발사고를 능가하는 규모였던 것으로 전하고 있다.
작고하신 고 변원신 어르신과 이상윤 어르신 증언에 따르면 이 폭발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고 그 바람에 안양의 구도심이 몽땅 타버렸다고 한다. 당시 탄약열차 위에는 피난민들도 타고 있었는데 헌병의 대피 명령에도 일부 피난민들이 열차에서 내리지 않고 숨어 있었다고 한다. 물론 이들은 폭발로 숨졌다.
또 건축사 최승원 선생님은 안양역에서 탄약열차수송열차 폭발 잔해가 60년대 초에도 열차바퀴가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고 전했다.
한편 안양의 지축을 뒤흔든 폭발사고 세건이 있다.
첫번째는 일제시대 말기인 1941년 천혜의 요새인 박달동 수리산 깊은 골짜기에 일제가 육군성 소속 탄약 저장시설(일명 군용지)을 설치하면서 안양과 폭발물과의 인연은 시작됐다.
일제의 패망으로 탄약저장 시설과 탄약을 인수한 미군은 일본군 탄약을 안산 넘어가는 본드레미 고개 아래 굴을 파서 그 안에서 폭발시켜 폐기처리했다.
당시의 목격자 중의 한 분인 고 변원신님은 주민대피령이 내린 가운데 지축을 울리는 폭발소리에 안양 도심의 창문이란 창문은 모조리 떨어졌고, 파편은 자신이 살고 있던 안양3동 양짓말까지 날아왔다고 증언한바 있다.
두번째 폭발사고는 1·4후퇴중인 1951년 초 대량의 폭발물을 수송하던 탄약열차가 안양역 정차 중에 폭발한 사건이다. 이 폭발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고 그 바람에 안양의 구도심이 몽땅 타버렸다고 당시의 목격자인 이상윤, 변원신씨는 증언했다.
세번째 폭발사고는 1964년 3월5일 오후 3시 경 모락산 자락 안양교도소 인근에 위치한 안양탄약분해소 폭발사건이다.
3명이 죽고 109명이 부상한 것으로 집계된 이 사고를 당시의 신문들이 ‘땅꺼진 대폭음 비극의 4시간’, ‘모락산 일대에 덮친 초연의 참극’, ‘폭음 4킬로 밖까지’, ‘산산조각 초연에 비극을 묻고’, ‘재소자 한때 철창잡고 아우성’, ‘교도소, 흥안교 어린이도 큰 피해’ 등의 크고 작은 머릿기사로 보도한 것을 통해 사고의 규모와 충격을 짐작할 수 있다.
(당시 신문기사 보기 https://ngoanyang.or.kr/689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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