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0/18 11

[최승원]안양시 의심지명에 대한 小考(2020.12.20)

안양시 의심지명에 대한 小考 고대 안양은 해양문화의 배후지역으로 내륙으로 들어가는 교두보배후 마을이다. 산이 많아 하천이 많고, 골과 고개가 많고, 범이 많았다. 벌은 고대전투지역이나 주변에 군사시설이 산재한다. 해양문화-미추홀 소래포구 배후지로 초기고구려유민 유입하였다. 망해암 삼성산 한천(한내) 샛강 산- 범고개 호계등 지명은 지형에서 나온다. 1905년 청일전쟁시 지도참고 1917년지도 참고 1974년지도 참고 *매곡동 (梅谷洞-구시흥군 반포동에도 있던 마을명 산봉우리 다섯이 매화꽃잎 처럼 솟은 가운대 이루어진 마을인데서 마을 이름이 유래되었다-서울지명사전) 한자어로 추정 *뺌말-빼어난 말 수촌(秀村)빼어날수 ( 水村? ) 현대에 한문을 사용치 않으므로 의심이 될 경우 앞으로 한자표기에(秀村) 사용..

[최승원]안양 박달2동 호현마을과 친목마을 이야기(2020.08.01)

(안양시) 박달2동 (호현마을과 친목마을) 석수역 안양천변에서 보면 수리산 배경에 말들이 놀던 참 아름다운 마을이 보인다. 그러나 시인 기형도는 ‘아침 저녁으로 샛강에 자욱이 안개가 낀다.‘ 로 그의 시에 남기었다. 안개의 강, 안개의 군단, 송전탑, 안개의 聖域, 공장들, 긴방죽 공장의 검은 굴뚝들, 폐수의 고장. 사전적으로는 박달은 박달나무의 준말이다. 밝다(박따)는 햇살이 눈부시게 밝다. 라는 의미가 있다. 새벽에 해 돗을 때, 낙조가 비치는 등대 같은 망해암을 관찰해 볼 필요가 있다. 구안산군 목감에서 범고개를 오르면 고개 넘어 삼성산과 관악산이 보인다. 한천(한내.안양천) 건너에 꽃이 많던 곳이 보인다. 시흥시사람 신현수는 근대에는 박달동에서 안양역 ㅅ자지붕이 보인다고 하였다. 고구려 잉벌현, ..

[안양권지도]일제강점기 지도속 안양(양지동과 담내동)

안양초교 27회동창회 블로그에서 최승원님 자료와 댓글 양지마을(원복상) 20.07.24 17:55 첫댓글 그시절 우리집이 보이네요. 양지마을 至字 와 洞字사이 왼편이 우리집 입니다. 현재는 서초등학교 앞이고요. 기능 더보기 양지마을(원복상) 20.07.24 18:31 양지마을에서 지 자가 해방후에는 알지를 쓴것으로 알고 있는데 해방전에는 이를지 자를 셨군요. 일본글씨는 양지마을 담안마을 이라 써 있군요. 기능 더보기 운제(촤승원) 작성자 20.07.25 20:52 하천변 인가요? 기능 더보기 운제(촤승원) 작성자 20.07.25 20:54 @운제(촤승원) 양지 음지로 봅니다. 기능 더보기 스쿨보이(문수길) 20.07.25 06:12 옛날엔 양짓말, 다만마을이라 알고 있었는데~ 기능 더보기 운제(촤승원) ..

[인물]건축가 최승원(1945~)

최승원 崔勝元 출생 1945. 서울 종로 국적 한국 건축사 주택을 주로 다루면서 티센쿠루프 천안공장을 통해 산업건축을 향상시키고 스틸건축의 일상화에 영향을 주었다. 5회의 개인전으로 건축의 전시지평을 넓이고 건축박물관을 개척하였다. 건축은 물론 조각가로도 활동하고, 사진에도 조예가 있다, 공예가판화가 유갈렬평전과 이중섭 김중업 강명구를 집필하였다. 서울 종로 필운동 출생 누하동207번지 입적 49년 초에 안양으로 이사 1969년 홍익대학교 건축학과에서 김중업교수에게 배우고 졸업하였다. 1952~54년 수원세류초등학교를 다니고 ROTC 7기로 수원비행장남측에서 기동타격소대장과 화성시 송산면독지리에서 33사 100연대에서 우수소대 해안경비소대장으로 채명신 2군 사령관상을 받고, 이어 ‘70년 남양100연대1..

[최승원]6.25전쟁시대 안양(2022.10.18)

6.25 전쟁시대 안양 6월25일 새벽4시 전면남침으로 6.25전쟁이 터지자 안양 비산동이 술렁거렸다. 한강교가 28일 사전 폭파되어 7월3일 북한군전차 한강도하로 남침이 다소 지연되었으나 7월4일 한강방어선이 붕괴되었다. 안양지역은 산세로 방어에 유리한 지역으로 남침시 국군의 안양지역방어는 견고했다고 인민군은 기술하고 있다. 탱크에 밀려 안양을 포기했지만 무기가 같은 수준 이라면 한국전쟁을 안양에서 막아냈을 것이다. 안양함락직전 안양역 남측 건널목에 는 하얀 옷을 입은 사람들이 남부여대하고 하얗게 깔려있었다. 모친이 철길에들어서자 넘어져 무릅에서 피가 철철 나와 우리는 비산동 집(심재황 초교 동기집) 부엌채로 귀가 하였다. 동네에 심부자 집 큰기와 집이 인민군내무서로 징발되어 초병이 칼이긴 총을 메고 ..

[최승원]6.25전쟁 나의 이야기()

6.25전쟁 나의이야기 - 보리가 익어 추수시 비산동 태평방직사택에서 돼지도 키우고 살던중 6.26전쟁이 터졌다. 인민군은 식량이 현지 조달이라 추수기를 남침의 시기로 보았다. 모든 피난민은 남부여대(男負女戴)하고 새하얀 무명 흰옷을 입고 경부선철도를 들어서자 마자 인파가 몰리는 중 넘어져 모친의 무릎에서 피가 심하게 나와 피난을 포기하고 집으로 철수하였다. 국군들은 안양천 안양방어선에서 치열한 방어를 다하였으나 무너지고 적치가 되었다. 동네 심 씨네 큰 한옥은 내무서가 되어 긴 충을 멘 인민군이 지키면서 동네사람들을 통치하였다. 동네 큰집은 아군이 사용하는 경우도 있기에 수난이다. 식품을 현지 조달하는 인민군은 우리집에서 키우던 새끼 밴 돼지를 공출하였었다, 이내 뱃속에 있던 새끼는 바켓스에 넣어 집으..

[20221117]안양천 안일초교앞 세월교 다리위는 연날리기 놀이터

2022.10.17/ #도시기록 #안양천 #놀이터 #연날리기 #문화도시/ 안양천 안일초등학교앞 세월교에서 만난 연 날리는 풍경. 지난 10월 6일 안양역앞 수암천 도시 재생지역을 돌아보다 안양역 하늘을 보니 하늘에 점점점. 자세히 보니 연이다. 어디서 날리는 걸까. 10여일이 지나 간만에 안양천을 걷다보니 안일초등학교앞 세월교 다리위에서 연을 날리는 사람이 있다. 자고로 하천은 물길이자 바람길이라 했던다. 안양천을 따라 부는 바람이 장난이 아니다. 연날리기에는 금상첨화로 연날리기 동호인들이 이곳으로 모여드니 그야말로 연날리기 놀이터다. 문화도시를 추진히는 안양시가 이같은 거점을 기억하고 활용할 방안을 찾아야 하지않을까. 한편 이곳에서 하류쪽으로 내려가다 만나는 안양대교 다리밑은 어르신들의 장기와 바둑 명..

[20221117]관람객도 없는 안양일번가 서이면사무소 공사중

2022.11.17/ #도시기록 #서이면사무소 #안양일번가/ 안양시 원도심 중심가인 안양일번가 한복판에 자리한 (구)서이면사무소는 일제강점기 당시 조선총독부의 최하위 행정관청이었다. 서이면사무소는 당초 1914년 3월 과천군 서이면의 면사무소로 안양 호계동에 세워진 건물이다. 서이면이 속하였던 과천군은 1914년 4월 행정구역 통폐합으로 시흥군에 속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서이면 역시 시흥군 관할이 되었다. 1917년 상서면과 하서면을 합하여 서이면으로 통합하면서 지금의 자리로 이전되었다. 건물을 이전하며 지은 상량문에는 "조선을 합하여 병풍을 삼았다. 새로 관청을 서이면에 지음에 마침 천장절을 만나 들보를 올린다"고 적어 일제의 통치를 찬양하였다. 1941년 10월 서이면이 안양면으로 개칭됨에 따라 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