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지역얘기 721

[최승원]안양예술공원으로 보는 지역건축에 대해서(2022.12.01)

이글은 월간 건축사지에 실린 최승원 건축사의 인터뷰 내용이다.022. 12. 1. 11:05ㆍ아티클 | Article/인터뷰 | Interview About the local architecture seen from Anyang Art Park _ Architect Choi, Seungwon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APAP)는 한국에서 가장 성공적인 공공예술사업으로 손꼽힌다. 낙후된 유원지와 중소 도시 도심에 예술조형물로 활력을 불어넣고, 우수한 국내외 작가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해 도시의 격을 높여 시민의 자산으로 정착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서울시의 도시게릴라 프로젝트나 광주 비엔날레의 도심 조형물 설치 작업인 ‘폴리 프로젝트’가 벤츠마킹한 대상이 되기도 했다. APAP는 2005년 만안구 안양유원지를 정비해..

[20230216]안양 출신의 극작가이자 언론인 이서구(1899~1981)

2023.02.16/ #기록 #아카이브 #인물 #이서구/ 극작가이자 언론인 이서구(1899~1981) 이서구 선생은 극작가이자 연극인, 영화인, 언론인으로 활동하는 등 다재다능한 활동과 업적으로 정부로부터 3차례나 훈장을 받았으나 사후에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에 포함되면서 그의 살아생전 업적은 일장춘몽이 되고 만 인물이다. 이서구(李瑞求.1899.4.5∼1981.5.25)는 1899년 4월 5일(양력) 후릉참봉 이관규(李冠珪)와 모 조성녀(趙姓女)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난 곳이 ‘서울’이라는 기록도 있고, ‘안양’이라는 기록도 있다. 하지만 그가 동아일보 신문기자가 되기 위해서 서울로 왔다는 기록이나 시골집으로 돌아간다는 암시적 표현으로 볼 때, 그가 태어난 곳은 안양, 주로 활동한 곳은 서울로 판..

[20230208]의왕 하우현성당 윤예원신부의 독립운동

윤예원 신부는 한국인으로서 23번째로 성직자가 된 인물로서 갑신정변이 일어난지 2년후가 되는 1886년(고종 23) 충남 부여군 구룡면 금사리에서 순교자의 후손인 윤정두의 5남 2녀중 3남으로 탄생하였다. 13세가 되는 1898년(광무 2) 기낭 신부의 추천으로 용산 예수성심 신학교에 입학하였으며, 1914년 3월 7일 사제서품을 받았는데, 윤 신부가 사제서품을 받은 1914년은 대한제국이 일제에 의하여 국권을 잃은지 4년후가 되는 시점이다. 신부가 된 이후 최초로 부임한 곳이 황해도 은율 본당신부인데, 이때부터 천주교의 대표적인 독립운동가 신부로 활동하였던 윤예원 신부의 본격적인 사목활동이 시작된 것이다. 윤 신부가 은율 성당에 부임한 이후로부터 5년후에 3.1운동이 발생하는데, 시위에 직접적으로 가담..

[조성현]안양시 승격 50주년 기념사업 제안(2023.02.07)

안양시 시 승격 50주년 기념사업 제안ㅡ ㅡ안양 1번가 등 지역명소화 사업 육성 방안ㅡ 안양 일번가내 옛 안양읍사무소 터 등 관아지에 청사사진을 곁들인 관공서 터 표석(안내판) 설치 방안 안양읍이 ㅡ시로 승격(1973) ㅡ 안양시 행정사(시청사)의 한축인 안양읍사무소 터 등에 표지석 설치(청사사진, 플러스) 방안 1905년 경부철도 개통 및 안양역 운영과 함께 시흥군청 등 곳곳의 다양한 공공건물(공공 건축) 입지는 안양역 인근 부지를 안양의 행정 중심인 안양ㅣ번가로서 자리 매김을 하는 기틀을 다진다 ㅡ 현재 안양 일번가는 그많은 공공시설물군이 역사의 뒤안길로 대부분 사라지고 그 자리에 음식점 등이 즐비하다 ㅡ 과거 안양 1번가에는 관제 안양행궁지(대궐터) 이외에 관제 안양읍사무소 터 시흥군청지, 안양경찰..

[20230129]민선 1.2대 안양시장을 지낸 이석용 시장

2023.01.29./ #아카이브 #기록 #인물 #군포 #안양 #이석용 11대 국회의원과 민선 1.2대 안양시장을 역임한 故 이석용 전 시장은 1938년 경기도 시흥군 남면(현 군포시)에서 태어났다. 경기고등학교,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대우실업 이사, 대우전자 사장 등을 지내며 기업체에서 잔뼈가 굵었다. 1981년 제1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한국당 후보로 경기도 안양시-시흥군-옹진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민주정의당 윤국노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그러나 1985년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한국당 후보로 경기도 안양시-광명시-시흥군-옹진군 선거구에 출마하였다가 신한민주당 이택돈 후보와 민주정의당 윤국노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이후 민주한국당을 탈당하여 신한민주당에 입당하였다. 1987년 신..

[20230128]안양에서 8.9.10.12대 4선을 역임한 이택돈의원

2023.01.28./ #아카이브 #기록 #역사 #인물 #안양 #이택돈 #국회의원 이택돈(李宅敦) (1935∼2012) 1935년 경기도 시흥군 수암면 고잔리 391번지에서 태어났다. 인천고등학교(52회),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였으며 제8회 사법시험에 합격하였다. 이후 서울고법 판사와 대법원 재판연구관등을 역임하다가 사직하고 변호사로 활동하다 1971년 제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민당 후보로 시흥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현역 전국구 국회의원인 민주공화당 이영호 후보를 꺾고 당선되면서 8·9·10·12대 국회의원을 지냈으며 신민당 정책연구실장, 대변인, 법제위원장, 사무총장, 원내총무, 부총재를 지냈다. 한일의원연맹 부회장도 역임했다. 1973년 제9대 국회의원 선거와 1978년 제10대 국회의원 선거..

[20230128]안양 출신 독립운동가 이영래(1873-1949)

2023.01.28/ #아카이브 #기록 #역사 #인물 #안양 #이영래 #독립운동가 이영래(李永來) 고종 10년(1873~1949) 본관은 全州. 泰純의 장남으로 1873년 4월 12일 경기도 과천군 상서면(현 안양시 동안구 비산동 113)에서 출생했다. 그는 1919년 3월 상경하였다가 독립만세운동의 상황을 목격하고 돌아와 자신의 동네에서도 만세운동을 전개할 계획을 하고, 3월 27일 광목 행상도중 서이면 일동리(안양시 동안구 관양동) 白基和 집에 들 러 그 집에 모여있던 敎 외 수명에게 「다른 마을에서는 조선독립만세를 크 게 불러 기세를 올리고 있는데 당신들은 짚신만 삼고 있어 되겠는가」라고 말한 후 주민 약 5명과 함께 그날밤 8시경 관양동 서쪽 언덕 위에서 독립만세를 소리 높이 외침으로써 독립운동의..

[20230128]42세때 국회의원에 당선 3선을 역임한 윤국노의원

2023.01.28./ #아카이브 #기록 #역사 #인물 #안양 #윤국노 #국회의원 윤국노(尹國老) (1936∼1986) 정치인. 본관은 해평. 호는 도암. 일제강점기 당시 경기도 평의원을 지낸 윤경섭과 어머니 김복성 사이에서 5형제 중 4남으로, 안양시 안양동 634에서 출생했다. 큰형 학노는 전 국회의장 이재형(작고)과 군포초등학교 동기동창으로 광복전에는 평양지법 판사. 광복후에는 대구.;대전.서울지법 부장판사를 역임한 원로법조인으로, 이승만 대통령의 법관 연임을 거부한 유일한 율사로 기록돼 있다. 양조업을 하는 부친 덕분으로 비교적 유복하게 자라 어려서부터 쌀을 몰래 빼어다 어려운 이웃을 돕기도 하고, 주말이면 안양2동에 있는 안양기독보육원을 찾아 원생들과 하루해를 보내기도 했다. 훗날 JC(청년회의..

[임희택]더이상 새벽에 듣기 힘든 추억의 소리(2022.11.24)

더 이상 새벽에 내 방에서 듣기 힘든 추억의 소리 셋. 망해암의 새벽 종소리...데~ㅇ 중앙성당의 정오 종소리 양명고 앞 철교 기차 지나는 소리. 새벽에는 유난히 크게 들려서 저 기차는 어디로 가는 걸까 상상을 하곤 했던... 이제는 소리를 가리는 건축물, 소음 등으로 듣기 힘들고 무엇보다 새벽에 깨어 있을 일이 없어서 더욱 그렇다. 추가로 우리집 앞 골목에서 우다다다 뛰며 떠들던 꼬맹이들 소리... 이제는 꼬맹이들 보는 것조차 쉽지 않아. 고령화, 다민족화? 노인들과 이주노동자들이 대다수.

[박찬응]둠벙을 찾아서 월암 표류기(2022.11.23)

둠벙을 찾아서 월암 표류기 월암마을과의 인연이 올해로 3년 차다. 월암벌에 펼쳐진 논과 밭과 왕송못에 반해 2020년 2월에 곳으로 이사를 왔다. 마지막 정착지라 여기고 그해 가을부터 이라는 노래를 짓고 그림을 그리며 지인들에게 공공연히 이곳이 나의 마지막 거주지임을 공언하고 다녔다. 2021년 어느 날 뉴스를 통해 대규모 신도시개발에 월암마을이 포함 되는 걸 보았다. 동의도 없이 떠나 줄 것을 통보 받은 셈이다. 또다시 떠다니는 신세가 되어 유유히 달바위골에 깃들여 살고가 하는 꿈은 허망한 꿈이 되었다. 월암의 봄, 여름, 가을, 겨울, 밤과 낮, 과 밤, 멀리서 보고 가까이서 보고 들어가서 보고 걸으면서 본 것들을 그렸다. 얼마후 새로운 거주지를 찾아 떠나겠지만 사는 동안 만이라도 그림으로 된 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