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지역명소/숨은공간

[군포]군포시청 뒷편 여산송씨 재실 묵음재(默蔭齋)

안양똑딱이 2022. 9. 20. 03:45

#도시기록 #묵음재 #默蔭齋 #여산송씨재실 #군포 #산본/ 군포시청 후문에서 현충탑 가는 길에 자리한 묵음재. 산본신도시 개발로 많은 땅을 수용당하고도 기꺼이 문중이 군포시청뒤에 현충탑을 지을수 있게 땅을 내놓은 명문가 여산송씨 재실이 있는 공간.
지금 군포시청에서 금정동 주민센터에 이르는 일대가 송씨네 문중 땅이었다. 재실을 짓고 재실마저 군포에서 열리는 다양한 행사에 개방한다. 그 재실 이름이 묵음재다. 재실 마당에는 수령 200년의 기품 있는 소나무가 우뚝 서있다.

묵음재(默蔭齋) 소개

묵음재는 여산송씨 정가공파 재궁종회의 재실이며 길 건너의 공원과 현충탑이 있는 곳의 옛 이름은 승지골로서 조선 초기에 사농사윤(司農少尹) 해주목사(海州牧使) 한성판윤(漢城 尹 현재의 서울시장. 정이품 正二品)을 지내신 송복산(宋福山 1390 ~ 1467)과 그의 아드님 숙 기(叔其)이하 누세의 송씨 선영을 모신 곳이다.
송복산의 호는 묵재(默營)이고 이 일대는 나라에서 그에게 내린 사패지였다. 현재의 현충탑이 서 있는 곳은 원래 송씨 종중에서 재실을 지으려던 곳이었으나 1995년 군포시의 사업계획에 협조하여 현충탑 부지로 1000평을 군포시에 무상 기증람으로써 호국영령들의 넋을 기리기 위한 안식처로 되었으며 묵음재를 이곳에 건립하게 된 것이다.
승지골이란 이름은 송복산의 증손으로 형조판서를 지내신 송겸(宋承)이 이곳에 거주하였으며 소이 1528년 동부승지를 역임한바 있으므로 그후 마을 사람들이 승지골로 불렀다.
재궁동은 판윤공(송복산)의 묘를 쓴후 그의 둘째 아들 찬() 이 세조 2년 단종이 폐위 사사되자 관직을 사직하고 묘 아래 집을 짖고 문과 창을 북쪽으로 향하게 하여 임금을 잊지 않는다는 뜻을 나타내니 당시 사람들이 과천처사라 불렀다. 그후 생육신 이맹전(李孟專)과 친하여 선산 금오산에 은거하니 송씨 종중에서 그 집을 개축하여 재실로 사용하였는데 그후 이부근을 송씨의 재실이 있는 마을이라하여 재궁동(宮洞)이라 불렀는데 후대로 오면서 재궁동이 변하여 재강골로 재강골이 쟁골로 변하여 부르다가 군포가 시로 승격되면서 옛 이름을 찾아 재궁동이 된 것이다. 송씨 재궁종회는 조선 세종(世宗) 이래 600여년의 오랜 역사를 가진 종중인데 그 재실이 실전(失傳)되었기에 이를 재건하여 역사적 내력을 계승하는 것이 숙원이었던 바 요즈음에는 거의 명맥이 끊어져 가는 우리 전통의 건축양식으로 1998년 1월 13일 착공하여 1998년 10월 31일 준공을 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