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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121]넌 누구냐? 안양 삼막천 콘크리트에 남겨진 동물 발자국

2022.11.21/ #기록 #발자국 #동물 #흔적 #삼막천/ 안양지속협의 11월 삼막천 상류 모니터링에서 발견한 동물 흔적. 지난 여름 수해로 천변이 쓸려내려간곳을 보수 공사한 콘크리트를 밟고 지나간 동물의 발자국이 마치 본을 뜨듯 남겨졌다. 발 크기가 아주 크고 발 앞쪽에 발톱이 있는걸 보아서 주민들이 간혹 보았다는 너구리가 아닐까 추정된다.

[20221120]안양 학의천의 까치들 목욕탕 다 드러났다

2022.11.20/ #도시기록 #안양 #학의천 #까치목욕탕/ 안양 학의천 수풀속에 있던 까치들의 목욕탕이 다 드러났다. 저 자리는 학의천 북단 산책로 수촌교 다리인근으로 지금은 마치 공사 현장의 웅덩이 같은 모양새지만 지난 여름 수해로 큰물이 지나가기 전에는 나무 수풀이 우거져 산책로 길에서 수풀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았던 곳이다. 하지만 큰물이 지나간후 나무와 수풀 대부분이 없어지는 등 환경이 크게 변했음에도 용케들 알고 멱 감으러 잘들 찾아온다. 그나저나 까치들의의 목욕하는 장면이 고스란히 다보이니 프라이버시 논란이 일어나지는 않을까.

[20221119]안양 삼성천(삼성교-만안교) 나무데크에 노란 카페트

2022.11.19/ #도시기록 #안양 #삼성천/ 안양대교옆 삼성교다리에서 만안교까지 삼성천 서쪽 뚝방위에 보행용 나무데크가 설치되고 막바지 공사로 야간 LED조명 설치 작업이 한창이다. 나무데크에는 뚝방위에 심어진 안양시목인 은행나무에서 떨어진 노란 은행잎이 마치 카페트처럼 깔려 멋지다.

[20221119]안양에서 유명했던 산부인과 운영했던 신영순원장

전국적으로 유명했던 신영순 병원장과 국회의원을 지냈던 신영순(申英順.1936-2019)씨는 1936년 황해도 신천에서 출생해 인천여고와 1961년 수도의과대학(고려대 의대 전신)을 졸업했으며, 가톨릭의과대학교 대학원(의학박사,1984)을 나왔다. 그녀는 1965년 신영순병원장, 1986년 경기도여성단체협의회장과 1993년 6월1일 제17대 한국여자의사회장, 고대의대 교우회장, 1994년 대한의사협회 부회장, 1995년 사단법인 베트님한인 2세와 하께 가는모임 공동대표, 1988년에는 당시 여당이던 민정당 전국구 비례의원으로 제13대 국회에 진출해 정치에 입문하기도 하는 등 여장부다운 면모를 과시했었다. 1992년 4년의 임기를 끝낸 신영순은 의사이자 활동가로 돌아와 1996년 12월 안양8동에 모자보건 ..

[20221119]25만명 아기들이 태어난 전국적으로 유명했던 신영순병원

25만명의 아기들이 태어난 신영순병원 안양하면 떠오르는 것은 무엇일까? 포도, 영화, 안양유원지 그리고 신병원이 있다. 1965년 5월, 경기도 안양시 안양1동(안양시 안양동 674-179)에서 신영순산부인과로 개업한 후 1979년 신영순병원과 1996년 12월 안양8동에 병원을 새로 신축해 이전하면서 신병원으로 이름이 바뀌고 2003년 폐업하며 문을 닫기까지 34년 동안 25만명이 넘는 아기들이 태어난 곳이다. "지역주민에 대한 양질의 의료보건서비스와 모자보건 및 가족계획사업의 선구자적 역할을 충실히 수행함은 물론 질 높은 의료기관으로서 국민보건향상과 복지사회 건설을 위해 인술 · 친절 · 봉사의 정신으로 지역사회가 필요로 하는 전문병원이 되고자한다" 박애·인화·노력은 이 병원의 운영이념인 동시에 환자..

[20221119]천년역사의 보물창고 안양사지

2022.11.19/ #도시기록 #안양사지 #안양박물관 #김중업건축박물관/ 통일신라 827년에 지은 '중초사(中初寺)'이래 고려 900년 세운 '안양사'가 조선까지 불맥을 이어간 사찰지위에 한국 건축계의 거장 고 김중업씨가 설계해 1959년 5월 건립한 제약공장이었던 유유산업 안양공장 건물을 리모델링 공사를 통해 2개의 박물관 공간으로 재탄생했다. 이름하여 '김중업건축박물관+안양박물관'으로 박물관이 들어선 자리는 천년 역사가 담겨져 있는 보물창고와도 같은 곳이다.

[20221119]안양 만안구청은 건축가 나상기가 설계한 작품

2022.11.19/ #도시기록 #만안구청 #구안양시청 #건축 #나상기_설계. #1975년_신축/ 현재의 만안구청 터는 밤나무가 무성한 율원(栗園) 이었다. 경기도 임업시험장(1938~1971)으로 쓰이다가 안양읍이 1973년 시로 승격하였으나, 새 청사가 마련되지 못한 관계로 안양1동(현 안양일번가)에 있던 안양읍 청사에서 일시 업무를 보다가 시 승격 2주년이 되는 1975년 7월 여기에 최초의 안양시 청사를 신축하고 이전하였다. 안양시청은 평촌 신도시로 이전하고 1996년 11월 부터 만안구 청사로 사용하고 있다. 청사 본관은 건축가 나 상기(相紀, 1927~ 1989)의 설계로 모더니즘을 둘러싼 동 시대의 건축적 조류와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하면서 독자적인 디자인을 보이고 있다. 건물정면의 입면을 ..

[20221118]안양예술공원 초입 안양수영장터 안내표지판 초라하다

2022.11.19/ #도시기록 #안내판 #안양풀 #안양예술공원 #안양수영장터/ 오래전 안양시와 안양문화예술재단에서 안양예술공원 초입에 세운 안양수영장터 안내표지판. 표지판도 쬐그마하고 글씨도 잘보이질 않아 초라하기 짝이없다. 새롭게 큼지막하게 만들어 공간에 담긴 역사와 문화를 제대로 알릴 필요가 있다. 안양풀 - 안양유원지 - 안양예술공원의 역사 경기 안양시 안양예술공원. 과거 안양 풀 또는 안양유원지로 불리우던 이곳은 성산과 관악산의 풍부한 문화유산과 더불어 고래로 시인묵객들의 발길을 붙잡아 풍류담과 더불어 많은 시문을 남기게 하기도 했으며 고려조의 명신 강감찬은 이 곳을 경기금강이라고 불리웠다. 특히 조선왕조실록 태종 17년 편에 의하면 태종 17년 금천 현감 김 문과 수원 부사 박 강생이 과천 현..

[20221118]안양예술공원 초입 계곡에 있는 안양풀 일본어 표지석

2022.11.18/ #도시기록 #표지석 #안양풀 #안양예술공원/ 안양예술공원 초입 계곡에 있는 일본어 표지석. 일제강점기 당시인 1932년 안양풀을 만들때 조성한 표지석으로 대형 암석에 일본어로 새겨진 명문이 남아 있다. 안양예술공원 입구 주차장을 지나 오른쪽 도로를 따라 100미터쯤 지나 삼성천으로 가는 돌계단을 내려가면 자연석으로 된 거대한 초석에 '일본어로 쓰여진 안양 풀 글씨와 소화 7년 8월 준공(安養 プ-ル 昭和 七年 八月 竣工)'이라는 일본 연호 명문과 마쓰모도(松本)라는 공사책임자의 이름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초석의 3분의 2 가량이 1977년 대홍수 이후 안양유원지를 재개발하는 과정에서 들과 콘크리트로 뚝을 쌓으면서 덮어버려 마지막 글자를 판독할 수 없는 아쉬움이 있다. 한편 안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