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머신/옛사진읽기

1974년 안양 장내동성당(현 중앙성당) 뒷골목

안양똑딱이 2017. 7. 4. 14:28

 

1974년 안양 장내동성당(현 중앙성당) 뒷골목 정비

#안양 #기억 #추억 #도시 #골목 #장내동성당 #중앙성당/ 1974년 안양4동에 자리한 장내동성당(현 중앙성당) 뒷 골목(냉천로 172번길)을 정비하는 모습으로 사진 왼쪽 소나무 틈새로 살짝 보이는 건물이 옛 성당의 뒷쪽(제의실) 이고, 사진 중앙의 2층 건물이 당시 사제관(이후 수녀원으로 사용됨)으로 지금 그 자리에는 안양유치원이 들어서 있다.

사제관 건물 오른쪽 뒤로 굴뚝과 건물들이 보이는데 당시 고려석면 안양공장(현 2001아울렛_벽산쇼핑과 벽산아파트)이다.

안양 중앙성당(장내동성당)은 과거 지금보다 그 면적이 매우 넓었다. 사진속 골목길 오른쪽으로 지금은 단독주택 집들이 들어서 있지만 1970년대 이전만 하더라도 나무가 우거진 숲이 있었으며 1970년대 초반에 성당이 이 땅을 단독 주택 필지로 매각하면서 사진속 골목길도 생겨났다. 

안양4동은 과거 밤나무 울타리안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장내동 또는 담안(墻內洞.澹安)이라 불리웠는데 조선시대에는 과천군 하서면 장내리라 칭했던 마을로, 진주 강씨, 전주 이씨, 원주 원씨 등이 세거하면서 취락이 이루어졌는데 밤나무, 뽕나무 등이 많았다고 한다.
일제강점기 때만 해도 대부분의 지역이 밤나무가 무성한 밤동산이었는데 지금의 2001아울렛과 중앙성당 주변은 ‘좌백율원’이라는 대단위 율원이 조성되어 밤을 주우려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는데 1928년(10월 7일)과 1929년(10월 13일)에도 조선일보 주최로 제2회와 3회 여자습률대회가 담안(장내동, 안양4동, 중앙성당 주변)에서 열렸다. 이같은 기록은 안양 연표에도 올라 있으며 작고하신 변원신 어른신도 말슴하신 바 있다.

밤줍기 대회는 이후 1933년(10월1일)과 1934년(10월1일) 신가정(여성동아 전신) 주최로 제1회와 제2회 전국 부인 밤 줍기 대회가 안양3.9동 일대인 노적봉 아래(현재의 성원아파트, 프라자아파트 주변)에서도 열렸는데 재미있는 사실은 당시 밤줍기 대회는 밤을 줍는 것이 목적이 아니었다고 한다. 그 이유는 1920-30년대만 하더라도 여성들의 외출이 쉽지 않았기에 습률대회를 명분으로 수백명의 여성(여류 명사)들이 전세낸 기차를 타고 서울에서 안양으로 나들이를 나와 서로 교재하고 친목을 나누고 했다. 당시 행사를 언론사에서 직접 주관했는데 행사 참가를 꺼리는 경우가 적지않아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자녀와 동반 참석토록 하고 사기를 올려주기 위해 재미있는 유희와 갖가지 상품과 경품도 준비해 나들이 행사를 준비했다.

밤동산이었던 안양4동이 개화되기 시작한 것은 1954년 천주교 안양성당이 건립되면서 부터다. 안양성당은 서울교구가 1937년 밤나무밭 6,657평을 교회부지로 매입한 후 1954년 구천우(具天祐)신부가 목조함석 지붕의 24평 규모의 성당을 건축하여 노기남 주교의 주례로 축성식을 가져 시흥군 안양읍 유일의 천주교가 되었으다.

1956년 5월4일에는 성당 건너편 터(현 가톨릭사회복지센터)에 안양 최초의 유치원을 개설해 유아교육사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이후 안양성당은 1958년엔 명동성당과 같은 고딕형 성당을 목조로 짓고 장내동성당과 안양4동성당으로 불리우면서 그동안 비산동, 호계동, 명학, 석수동 본당을 분당시키는 등 안양의 모태성당으로 자리잡아왔다.

1969년에는 성당 정문앞 도로 건너 땅에 독일인 사복수녀인 서말가리다씨 등 AFI회원들이 근로자회관을 신축해 노동자 복지 및 교육사업을 시작했는데 당시 노동자들의 보금자리 역할은 물론 암울했던 1960-80년대 지역사회의 집회장소 및 사회교육공간, 노숙자.노인 무료급식소, 이주노동자상담소등도 운영했다. 

장내동성당은 그후 건물이 오래돼 안전문제가 생기자 1991년 고건선 당시 주임신부 지휘 아래 새 성당 건축에 들어갔으며 1995년부터는 중앙성당으로 불리우기 시작한다. 

1988년에 기존 고딕식 성당이 있던 자리에 철골조. 노출콘크리트로 지은 새 성전이 완공되어 눈길과 발길을 머물게 하는데 성당 외관이 학을 떠올리게도 하고, 교황님 모자를 연상케하고 남성 신체의 일부처럼 보여지기도 할 만큼 톡특한 조형미로 건축학도들의 순례코스이기도 하다. 

성당 설계자인 김영섭(시몬, 건축문화연구소 소장)씨는 15세기 독일 화가 알브레히트 뒤러(Albrecht Durer)의 그림 '기도하는 손'을 소재로 했다고 한다. 성당에 들어서는 이 누구나 기도하는 손 안에 머무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