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머신/옛사진읽기

1977년 안양 대수해_안양천 수푸루지 피해 복구 현장

안양똑딱이 2017. 7. 22.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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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년 안양대수해 당시 안양1동 구시장에서 비산동으로 건너가는 안양천 수푸루지 다리 인근의 천변을 청소하고 피해를 복구하는 현장 모습이다.

사진을 찍은 곳은 수푸루지다리(현 임곡교)위로 사진 앞쪽은 석수동 방향으로 멀리 미루나무 숲이 보이는데 그 앞이 양명고교이다. 사진 왼쪽에 보이는 대형공장은 아트지 등 고급종이를 생산하던 한국제지(현 안양1동 삼성 레미안아파트)이고 오른쪽 나무 숲 사이로 보이는 도로는 석수동에서 호계삼거리를 연결하는 경수산업도로이다.

사진에는 보이지 않지만 당시 수푸루지 다리는 안양지역의 집중호우로 다리가 끊어져 안양천 건너편 비산동 수푸루지 동네(임곡마을)에서 안양시내 및 전철 출퇴근을 해야하는 주민들과 안양초교로 통학하던 학생들은 줄배(배 앞뒤로 줄을 묶어 댕겨 건너는)를 타고 안양천을 건너다녀야 했다. 
안양 사상 최대의 사건으로 지금도 안양 대수해, 안양 대홍수, 쌍칠(77)년 대홍수 등으로 불리우고 있는 1977년의 집중 호우는 7월 8일 밤부터 9일까지 단 하루만에 내린 강우량이 무려 454.5mm로 기상청 창설 이래 최대의 강우량을 기록했다.

당시 안양 원도심은 마치 양동이로 물을 쏟아 붓는 듯한 물폭탄과 해일처럼 밀려드는 물살에 잠긴 수중도시가 됐다.  9천4백39명의 수재민과 사망.실종 257명 재산피해 1백85억에 이르는 유래없는 참사를 빚었으며 안양천, 학의천, 수암천, 삼성천 등의 제방이 유실되었고 안양과 서울을 연결하는 안양대교는 교각이 주저앉았고 안양시내와 비산동을 연결하는 수푸루지 다리는 끊기는 등 그 피해가 엄청났다.

또 삼성산과 관악산에서는 산사태가 발생해 거대한 바위와 흙이 쏟아져 안양유원지(현 안양예술공원) 계곡은 처참하게 파괴되고 안양천 등 하천변에 자리한 각종 공장들도 침수돼 기계와 원자재들이 무용지물이 되는 등 많은 피해를 입었다.

 

 

1977년 안양대수해 당시 안양1동 구시장에서 비산동으로 건너가는 안양천 수푸루지 다리 인근의 천변을 청소하고 피해를 복구하는 현장 모습이다.
사진을 찍은 곳은 안양1동 당시 구시장쪽 수푸루지다리(현 임곡교) 사진 앞쪽에 보이는 산은 비봉산 산자락으로 사진에는 보이지 않지만 당시 대림전문대학(현 대림대학교) 신축 공사가 시작될 무렵이다. 사진 중간에 보이는 도로에 보이는 석수동에서 호계삼거리를 연결하는 경수산업도로로 개통한 직후로 오가는 차량이 많지 않았다.
사진에는 보이지 않지만 당시 수푸루지 다리는 안양지역의 집중호우로 다리가 끊어져 안양천 건너편 비산동 수푸루지 동네(임곡마을)에서 안양시내 및 전철 출퇴근을 해야하는 주민들과 안양초교로 통학하던 학생들은 줄배(배 앞뒤로 줄을 묶어 댕겨 건너는)를 타고 안양천을 건너다녀야 했다.

 

 

1977년 안양대수해 당시 안양1동 구시장에서 비산동으로 건너가는 안양천 수푸루지 다리 인근의 천변을 청소하고 피해를 복구하는 현장 모습이다.
사진을 찍은 곳은 안양7동 덕천마을쪽 천변 뚝방으로 사진에 보이는 자그마한 산이 망해암과 안양무선표지소(비행기 등대)가 자리한 비봉산이고 산자락에 깍인 흔적이 보이는 곳은 수푸루지마을(현 임곡마을)의 초입으로 당시 대림전문대학(현 대림대학교)을 신축하기 시작할 무렵으로 77년 이전 그 자리에는 판잣집들이 빼곡히 들어찼던 곳이다.